미국 이어 프랑스도… 유럽판 IRA 시작 되나
중국산 EV 견제에 덩달아 현대차그룹 발목
프랑스 전기차 시장 5위, 주도권 하락 우려
니로·코나·쏘울 보조금 끊길 듯
전기차 보조금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거 흘러들어가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그랬고, 이번엔 프랑스다. 올 초부터 우려되던 유럽판 IRA의 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환경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프랑스 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탄소 발자국 점수와 재활용 점수를 합산한 환경점수가 최소 60점 이상인 경우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탄소발자국은 제품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한 지표로, 탄소배출량이 높은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명목은 탄소 저감을 내세웠지만, 이번 개편안의 속내에는 무섭게 점유율을 높이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견제가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프랑스 정부가 산정한 국가별 탄소 배출 계수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높게 적용되면서 사실상 보조금을 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산정한 국가별 탄소배출 계수를 보면, 철강의 경우 1kg당 유럽연합은 1.4kg인 반면 한국 1.7kg, 중국은 2.0kg으로 정해졌다. 알루미늄은 유럽연합 8.6kg, 한국 18.5kg, 중국은 20.0kg로 유럽의 배를 훌쩍 넘는다.
문제는 중국은 견제하는 이 법안의 기준이 우리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유럽과 비교해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높아 철강 제품 생산 시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의 이번 개편안은 적어도 한국과 중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업체들에게만큼은 유럽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해야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프랑스의 보조금 개편안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선별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랑스판 IRA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업체에 대한 견제는 물론, 유럽 브랜드라 할지라도 중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를 줄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실제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들의 프랑스 시장 점유율은 25%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판 IRA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 5월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1분기 전기차 보조금 40%가 아시아의 자동차 제조업체에 돌아갔다”고 말한 바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우리는 시장을 폐쇄하지 않을 것이지만, 비유럽 산업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프랑스 납세자의 돈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이에 프랑스 내 전기차 점유율 확대에 나서던 현대차그룹도 갑작스레 발목이 잡히게 됐다. 판매량 규모가 큰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겠지만, 보조금 지급이 판매량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프랑스 내 시장 확대에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22만1001대로, 현대차·기아는 1만6570대를 판매하면서 시장 점유율 5위를 차지했다. 이 중 68.4%는 보조금 수혜를 받아 판매됐다.
현대차·기아가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차종은 니로EV, 코나EV, 쏘울 EV, EV6, 아이오닉 EV, 아이오닉5, 아이오닉 6등 총 6종이지만 이 중 코나, 니로, 쏘울 등 3종만 보조금 지급 대상이다.
특히 유럽은 미국과 달리 소형 차종의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이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판매량에 작지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여부가 구매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도 지난해 말 IRA 시행 후 보조금 적용에서 배제되면서 전기차 판매량이 하락한 바 있다. 이에 IRA 법안이 닿지 않는 리스 비중을 높이고, 보조금 적용시 가격으로 차량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량 하락을 겨우 방어하고 있다.
전기차 자국 생산을 유도하는 국가가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번지면서 전기차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현대차의 셈법도 복잡해질 예정이다. 우선 프랑스 보조금 개편안에서 명시하는 탄소배출 계수 기준과 산정방식, 근거 등이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만큼의 타격은 아니겠지만 전기차라는 것이 여전히 보조금 적용 여부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보조금이 적용되지 않으면 점유율 하락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