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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이 말하는 이순신의 예지몽과 현몽 [홍종선의 명장면③]


입력 2023.12.25 13:27 수정 2023.12.25 15:40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속 명장면 2+1

이순신이 된 배우 김윤석 ⓒ이하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 제작 ㈜빅스톤픽쳐스,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명장면을 전투 신(scene) 외에서 만났다고 하면 어불성설일까.


러닝타임 153분 가운데 100분, 무려 1시간 40분 동안 해전이 펼쳐진다. 넘치는 박진감에 손에 땀을 쥔다. 끓어오르는 애국심에 가슴이 벅차고 왜에 대한 적개심에 부르르 떨린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떠오를 두 가지 명장면은 격전의 순간이 아니다. 한 번은 노량 바다 위에서 펼쳐지기는 하나 포와 총, 칼과 활이 부딪치는 순간이 아니고, 또 한 번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그려진다.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이순신 장군의 예지몽이나 현몽, 꿈이다. 일찍이 ‘추격자’(2008) 개봉 직전, 영화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배우 김윤석을 일컬어 ‘연기의 마스터’라 칭하고, “‘추격자’ 촬영 현장에는 김윤석이라는 ‘큰 산’이 있었다”고 말했듯, 연기의 대가가 있어 가능했던 명장면이다. 15년 전에 이미 연기를 통달한 마스터였으니, 지금은 말해 무엇할까.


광화문에 서 계시던 그 분이 살아온 듯 ⓒ


먼저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는 현몽부터 얘기해 보자.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의 설명에 따르면, 명량에서 노량 사이가 장군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 명량에서 겨우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상대로 기적적 승리를 거둬냈으나 임금이 있는 한양으로 가 감옥살이해야 했고, 철창에 갇힌 아들을 보러 물길로 찾아왔던 노모가 돌아가셨고 아들로서 3년 상을 치러야 하나 다시 바다로 싸우러 가야 했고, 왜군이 아산 본가까지 난입해 자신과 가장 닮은 아들 면을 죽였다.


말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 모진 세월 속에 노량으로 나아간 것이다 보니 영화에서 보듯 반 시체가 되어 식은땀을 흘리고 각혈하며 곡기를 뜨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고, 그러다가도 해가 뜨면 다시 7년이나 지속 중인 전장으로 나아갔다.


현몽은 노량 해전 직전, 몸이 아파 제대로 잠들지 못하던 이순신이 설핏 비몽사몽 꿈속에서 아들이 죽는 장면을 생생한 현실인 듯 그 처참한 현장에서 지켜보게 되는 꿈이다. 어서 가서 아들을 구해야 하는데 발은 연못에 담가져 있고, 물속에서 괴수 같은 것들이 순신의 다리를 잡고 온몸을 잡으며 아비의 갈 길을 막는다. 귀하디귀한 아들이 죽어가는데 나라는 구하고 민족은 구하면서도 아무것도 못 한 채 자식을 잃는 순신이다.


명장 이순신 이면에 사람 이순신 ⓒ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다, 민족의 횃불이다, 얘기합니다. 성웅, 민족의 영웅 이면에 군인으로 살다 간 가장 불행한 남자를 보았어요. ‘진실되게’ 표현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아산 본가 난입 사건, 왜군이 얼마나 간악한지…. 일본 막부들은 자기 가문마다 문양이 다 달라요, 그걸 깃발에도 칼에도 그려 넣고 새겨 넣는데, 일부러 다른 가문의 칼을 들고 면을 죽인 거예요. 다른 가문인 척, 범인마저 잡지 못하게.”


“이면은 셋째아들인데, 순신과 가장 닮았다는 아들이에요, 명민하고 무예가 출중하고. 부모가 가장 큰 천벌을 받는 게 자식 죽는 것 보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아들이 죽는 것을) 보는데, 온몸이 ‘덜덜덜’ 덜리는 느낌 처음 받아봤습니다. 몰입하다 보니, 자식 죽는 걸 낸 눈으로 본다, 대사가 잘 나오지 않는 걸 처음 겪어봤습니다.”


이면을 배우 여진구가 연기했다. 영화 ‘화이’에서는 아빠와 아들이었되 혈육은 아니었는데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부자지간이 됐다. 실로 닮아 보인다.


“믿음직한 친구라 (면을) 하게 됐다고 해서 되게 고마웠어요. 육체적 파워가 너무 좋아요. 신체가 우량하고 건강한데 액션도 너무 잘하고요. 고마웠습니다.”


명장면 두 가지는 보도 스틸이 없다. 영화를 직접 봐야 하는 이유 ⓒ

예지몽 얘기를 해 볼까. “이제 싸움의 양상이 바뀌어 (함대 대 함대 대규모 전투에서) 조선과 왜, 명의 수군들이 서로의 배에 올라 백병전을 치르는 순간입니다. 그때 해가 뜹니다. 동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그때 김한민 감독님이 ‘선배 여기서, 장군님이 예지몽도 많이 꾸시고 하는 분인데, 그 해를 보면서 어떤 운명이라는 것이 본인에게 왔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 어쩌면 이 해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 보는 해일 수 있지 않을까!”


배우 김윤석은 인터뷰 내내, 감독 김한민만큼 이순신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싶을 만큼 사료를 탐독하고 그 역사 현장에 다 가보더라며 그 집념과 끈기를 극찬했다. “궁금하면 김한민”, 이순신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김한민 감독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며 공을 감독에게 돌렸다.


“밤새 전투를 치르다 바다 동쪽에서 7년을 봐 온 해가 뜰 때, 본인에게 귀했던 사람을 보는 겁니다. 구산포에서 끝까지 싸우다 왜군의 총탄에 직사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김재영 분), 향도라는 별명 그대로 물길을 가장 잘 아는 수군향도 어영담, 안성기 선배가 하셨던 분, 그리고 ‘이순신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공명 분), 왜군에 물러섬없이 싸우다 칠천량 바다에 스스로 뛰어내려 죽은, 죽기 전에 ‘우리는 질 겁니다’ 통제사 원균에게 보고했던…. 그 세 사람을 만나는데, (그 배 위에 다시 선 듯한 감회에 찬) 굉장히, 그 장면을 찍는데, (추스르고) 이게 그냥 전쟁이 아니구나, 이 귀한 사람들을 다 빼앗아 가는 전쟁이구나! 자신도 한 사람의 군인으로 백의종군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이순신은 죽는 순간까지 북을 쳤다. 백병전이 되고야 만 지금, 어떠한 전법이나 엄한 지령이 무색한 지금, 노량 바다 위에서 왜군과 육탄전을 벌이든 노를 젓든 백성의 안위를 온몸에 받아 안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을 독려하고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북소리. 떨어지는 육체의 힘을 끌어올리게 하고 소침해지는 용기를 북돋워 승리의 기세를 견인하는 북소리에 전율이 인다.


몸과 몸을 부딪혀 백병전, 그 사이를 가르는 북소리 ⓒ

이순신이 이억기, 어영담, 정운을 만나는 장면에 전율이 이는 이유가 더 있다. 이순신만이 전장의 아군들 곁에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아꼈던 세 장군이, 아니 7년의 임진왜란 동안 먼저 갔던 모든 동료의 혼령이 ‘다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우는 느낌이 온다.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거북선’만 봐도 오금이 저렸던 왜군인데 사람하고만 싸워도 벅찰 텐데 원혼들까지 가세해 싸워주는데 어찌 조선의 수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압도적 승리였던 한산대첩, 말도 안 되는 기적의 명량해전, 역사적 대의의 승리였던 노량까지 그 대승의 이유가 보이는 순간 감격이 밀려온다.


그 감격 속에서,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슬픔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순신의 죽음이다. 북소리가 잠시 멎자 지원군으로 참전한 명나라 수군의 도독 진린(정재영 분)이 의아해하고, 다시 북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함께 이순신을 축으로 열띤 백병전을 이어간다. 어떻게 이어진 북소리인지 짐작하기에, 눈물을 참기 어렵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적어도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만 생각했어요. 사방에서 싸우고 있다, 내가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장군들이 내게로 오면 구멍이 나니까 최대한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죽는 것이다. 위대한 영웅의 위대한 죽음, 하늘을 나는 새도 죽이는 영웅의 진공상태가 아니고, ‘말 내지 마라, 싸움 이렇게 끝나선 안 된다. 여기서 섬멸하든 왜국 앞바다까지 쫓아가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 할 말만 하고 가는 거죠.”


덕을 갖춘 배우, 김윤석. ‘한산’의 지장, ‘명량’의 용장이 ‘노량’에 이르러 지·덕·체를 겸비한 진정한 명장이 됐다! ⓒ

순간, 정확히는 두 번째 문장부터, 김윤석이 말하는 것인가, 잠시 환청을 들은 듯했다. 평소 김윤석이라면 ‘제가’라고 말하는 화법을 지녔고, ‘장군님’이라는 호칭을 잊지 않을 사람인데, ‘내가’라고 칭하고 마치 일촉즉발의 그 순간에 있는 것처럼 유언을 말했다.


7년을 매일, 난중일기에 적어 진위가 헷갈리지 않게 적어놓아 한산과 명량의 진실은 알 수 있으나, 노량 그날에 대해선 일기를 적을 수 없었기에 주변인들의 말과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본인께서 직접 와 짧은 유언의 배경과 취지,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왜전의 끝을 내어야 한다는 유지를 또렷이 해주신 느낌이랄까. 인터뷰에도 명장면이 있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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