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 사명감 앞선 인간상"…영화 '파묘' 풍수사 상덕이 바라는 사회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에 정부 "어떤 이유든 환자 등 돌리는 행위 안 돼"
인간 본성 이해 부족한 정책…필수의료 인력난 및 지역의료 공백 개선될까
보험수가 조정 통해 기피 전공 지원…취약 지역 인센티브 도입 검토해야
"땅 파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 영화 <파묘>에서 풍수사 상덕이 자신을 내내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직업윤리상 비 오는 날엔 망자의 안녕을 위해 화장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상덕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묘"라며 파묘를 못하겠다고 했지만, 해당 묫자리가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은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아 결혼을 앞둔 딸에게, 그 자손들에게 풍수사로서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는 직업적 소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현실에서는 <파묘>의 상덕과 같은 직업윤리와 사명감을 개인에게 바라며 펼치는 정책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한 일이 대표적이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는 돈벌이가 되는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에 몰리기보다 생명과 직결된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청년과 등 필수 의료 과를 기피하는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한 대책이다. 의사 수를 마구 늘려 필수 의료가 취약한 지역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에 불만이 있어도 그렇지, 직업적 소명 의식이 필요한 의사들이 고작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환자들 곁을 떠나 거리로 나와도 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청년들로서, 전공의들에게는 의료 현장을 지킬 의무가 있다"며 "어떤 이유로든 의사가 환자에 등 돌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복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계획대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필수의료의 인력난과 취약 지역의 의료 환경 개선이 되기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합당한 보상 없이 의사들의 직업적 사명감에 기대서 해결될 문제 같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비필수의료보다 상대적으로 진료여건, 처우가 좋지 않고 빈번한 형사소송 등 법적 부담까지 큰 지역 필수의료에 의사 유입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의사들은 "기존 의료시스템 자체가 전공의들 월 500만원도 안주면서 싼값에 당직 3교대 돌려가면서 유지되고 있다"며 전공의들의 처우 개선 없이는 하나마나한 정책이라는 주장이 거세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사명감만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는다고 말한다. "히포크라테스라도 이 나라에서는 성형외과 피부 미용을 택할 것"이라며 자조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부는 보험수가 조정을 통해 기피 전공을 지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의사들이 취약 지역에 스스로 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사명감도 돈에서 나온다. 그에 걸맞은 대우가 있어야 사명감이 나온다" 충주시청 김선태 주무관이 하위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한 말이다. 이 말처럼 단순히 의사들에게 '의료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정부 정책 수립자들이 생색만 내는 지원책이 아니라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해온 의사들을 위한 파격적인 대책으로 전공의 복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 과 의사들 마저 파업하는 건 단순히 '2000명 증원'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장기간 개선되지 않은 처우 문제 때문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