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 세미나 개최
전문가들 "형법 98조, 국가보안법 4조 등 개정해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블랙요원 리스트' 유출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현행 간첩법의 한계를 법 개정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특히 윤 의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간첩죄를 적국에만 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선진국 기준에 맞는 간첩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윤상현 의원은 8일 국회에서 '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을 주제로 한 긴급 국회정책세미나를 열어 "외국이나 외국인 단체, 비국가행위자의 간첩 활동도 처벌해야 한다"며 "군사기밀뿐만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과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작년에 적발된 이른바 전북간첩망·창원간첩망·제주간첩망 및 민노총 침투 간첩망에 대한 기소 과정에서도 간첩죄가 부분적으로만 적용됐다"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못 부른 홍길동의 '호부호형'(呼父呼兄)이 떠오른다"고 꼬집었다.
이어 "간첩 행위자들을 실정법상 간첩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가장 먼저 개정해야 할 것은 형법 제98조 간첩죄 항목인데 적국뿐 아니라 외국·외국인 단체와 비국가행위자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게 개정돼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제4조 1항 2호에 국가기밀뿐 아니라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각종 정보를 탐지·수집·전달·중계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석광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토론에서 "미국 연방법 제793조엔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국방 등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경우, 제794조엔 외국 정부·파벌·정당·군대 등에 국방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를, 제798조는 기밀정보를 미국에 해를 끼치는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자 등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각종 정보를 수집해 전달했는데도 국가기밀이 아닐 경우 간첩죄 적용이 불가하거나 적국을 위해(형법), 적을 위해(군형법),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국가보안법) 북한만 아니면 형법상 간첩으로 처벌 불가하다"며 "이는 국민적 법 감정과 실정법의 괴리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국현 전 국정원 방첩국장도 "스파이(간첩) 활동에 대응하는 방첩업무를 평생 해온 입장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해 말씀드린다"며 "우리 간첩법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방첩업 현장에서 스파이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계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 전 국장은 "미국·독일·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간첩죄 조항에 외국 등을 명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외국 입법사례를 반영하고, 국가안보 개념이 군사·외교·국방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통상정책기밀이나 첨단산업기술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안보·국익을 해치는 여러 위협행위들을 간첩죄로 담아내는 간첩법제의 혁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힘줘 말했다.
박주현 전 경찰수사연수원 안보학과장은 "문재인정부에서는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했고, 대공·안보수사를 경찰청 소속 '안보수사국' 산하 시·도경찰청 안보수사대로 옮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와 해외 수사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만큼 안보수사국을 국가수사본부에서 독립시켜 '국가안보수사본부' 편제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현행 간첩죄 관련 규정들은 형법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적국, 군형법의 경우에는 적, 국가보안법의 경우에는 그 주체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 명시돼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법상의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것 외에 간첩행위의 대상인 기밀의 범위를 정하거나 새로운 효율적 정보기관의 창설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용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법원행정처는 군사기밀보호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도 외국인 등에 대한 간첩죄를 신설하는 것은 부정적이라고 한다. 민주당도 미온적"이라며 "그 결과가 솜방망이 처벌이다. 첨단 산업 기술 유출이 국익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시대다. 우리도 간첩죄를 다른 나라들처럼 바꿔 적국·우방국 가리지 않고 기밀 유출을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