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탄핵 정국으로 국가 신뢰도 '추락'
기업인들, 대외 신뢰 회복 위해 네트워크 총동원
여야 정치권, 노동계도 경제시스템 정상화 최우선시 해야
“나 멀쩡해. 정말 괜찮다니까.”
빙판길에 대(大)자로 넘어졌을 때나 연인에게 대차게 차였을 때,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빚투(빚내서 투자)’ 했다가 시원하게 말아 먹었을 때 자신을 향한 걱정의 시선을 물리치기 위해 주로 하는 말이다.
누가 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을 때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28개국 세계상공회의소 회장과 116개국 주한 외국대사에게 서한을 보냈다.
외교적 수사를 걷어 내면 대략 “우리 경제 멀쩡하니 제발 그 빌어먹을 우려와 동정의 시선 좀 거두시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우리 경제를 ‘멀쩡하지 않게’ 보는 외부의 시선이 많아지니 국내 최대 경제단체의 수장으로서 해명에 나선 것이다.
한 국가가 걱정스럽다든지, 안쓰럽다는 시선을 받는 것은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처럼 ‘조금 불편한’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투자한 돈을 회수하거나 거래 관계를 끊는 식의 매몰찬 조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내년 세계적인 경제 이벤트를 앞둔 상황이다. 세계 굴지의 기업 경영자들이 총 집결하는 세계 최대 경제인 행사 ‘APEC CEO서밋(Summit)’이 내년 하반기 경주에서 열린다.
행사 흥행에 실패해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은 APEC CEO서밋 의장인 최 회장으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우리가 대외적으로 ‘멀쩡하다’는 해명을 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 강국이자, K-콘텐츠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며 경외의 대상이 됐던 우리나라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졸지에 우려와 동정의 시선을 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폐해였든, 5000만명을 들러리로 강제 동원한 로맨틱 이벤트였든, 일을 저지른 자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도 모르는 채 집에 들어 앉아 하는 일 없이 국민 혈세만 받아먹고 있다.
야당은 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덮고 조기 대선으로 차기 대통령에 올릴 생각에 신이 났고, 여당은 한줌 남지도 않은 권력을 놓고 진흙탕 개싸움에 여념이 없다. 노동단체들은 계엄 저지의 일등공신임을 자처하며 그 대가로 언제든 파업을 벌이고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제재 받을 우려 없이 마음껏 기업의 목줄을 죌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자리할 기회를 노린다.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것은 오직 기업인들뿐인 듯하다. 최태원 회장 외에도 우리 기업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우리 경제 멀쩡하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의 차기 권력 핵심 인사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 달라,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유일한 사람은 정치인도, 고위 관료도 아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이들의 해명이 받아들여지려면 우리 경제가 ‘진짜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여야 정치권에는 정국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무엇보다 경제 관련 현안은 알력 다툼에서 배제하는 공생공존의 미덕이 요구된다. 노동계도 ‘혁명’ 타령은 그만 하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며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을 뒷받침해주는 게 책임 있는 경제주체의 자세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