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호텔 배경인 '체크인 한양' 등
퓨전 사극이 '대세' 된 방송가
배경은 조선시대지만, 현대적인 캐릭터와 서사로 ‘지금’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성소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정체성 문제까지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등 퓨전 사극이 인기 장르가 되면서 사극의 한계도 깨지고 있다.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 옥태영(임지연 분)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추영우 분)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리는 JTBC ‘옥씨부인전’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회차에서 9%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사극이면서도 진취적인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젊은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은 것이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노비였던 구덕이가 우연한 계기로 양반가의 아씨 옥택영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실력으로 이를 입증하는 그의 활약이 초반 흥미를 책임졌었다.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신분의 한계’까지 영리하기 깨부수며 ‘사극이지만 현대극 같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회차에서는 남자주인공의 성 정체성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옥택영과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성윤겸(추영우 분)이 성소수자였고, 같은 이유로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애심단’을 이끄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베일을 벗은 것. 사극에 성소수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파격적인 설정에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설정이 다소 갑작스럽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다만 조선시대 노비와 여성 등 ‘소수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옥씨부인전’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까지 아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채널A ‘체크인 한양’ 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가미해 현대적 감성을 느끼게 했다. 궁궐보다 화려한 초호화 여각 용천루에 인턴 사환으로 입사한 조선 꽃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조선의 호텔리어’라는 색다른 배경을 통해 기존의 사극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 중이다. 특히 방송 전부터 한양의 MZ세대를 표방하는 고수라(박재찬 분)의 활약을 강조하는 등 사극과 현대극의 감성 사이, 줄타기를 통해 차별화된 재미를 의도했다.
앞서는 KBS ‘환상연가’가 ‘이중인격’을 소재로 ‘판타지 사극’의 재미를 구현한 바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극, 또는 퓨전 사극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장르지만 최근에는 그 경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환상연가’ 외에도 티빙 ‘우씨왕후’ 비롯해 공개 앞둔 tvN ‘원경’ 등 배경은 과거지만, 액션·스릴러 등 다른 장르의 문법을 접목해 흥미를 배가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옥씨부인전’처럼, 이것이 ‘지금’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배경이 되며 ‘긍정적인’ 재미를 부각하기도 하지만, 일부 사극은 지나친 과감함으로 빈축을 사기도 한다. ‘우씨왕후’는 큰 제작비를 투입해 우씨왕후의 욕망을 스펙터클 하게 담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것이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는 평을 받으며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남겼었다. ‘원경’ 또한 여성들의 갈등과 욕망을 강조,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 어느 정도의 서사를 보여줄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현재’를 영리하게 담아내며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적절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가 되고 있는 ‘요즘’ 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