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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일 없는 혼란의 시대, ‘코미디’ 무대에 올리는 연극계


입력 2025.02.05 14:00 수정 2025.02.05 14:00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꽃의 비밀' '마트로시카' '구미식' 등 공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웃을 일 없는 혼돈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연극계는 코미디 작품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장진 감독의 ‘꽃의 비밀’ 10주년 기념 공연을 비롯해 윤제문이 출연하는 ‘마트로시카’ ‘구미식’ ‘대학살의 신’ 그리고 오랜 흥행작 ‘라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꽃의 비밀' 연습실 ⓒ파크컴퍼니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 빌라페로사를 배경으로, 축구에 빠져 집안일을 소홀히 하던 가부장적 남편들이 하루아침에 사고로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극이다. 주인공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전통적 역할을 거부하며 새로운 반란을 예고한다.


작품에는 황정민, 정영주, 장영남, 이엘, 이연희, 안소희, 공승연, 김슬기, 조재윤 등 내로라하는 배우가 대거 참여하며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공연은 오는 8일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개막한다.


3월 19일 선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연극 ‘마트로시카’는 나쁜 상황들이 휘몰아치듯 일어나는 가운데, 공연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는 단원들과 극단 대표의 이야기를 그리는 코미디극이다. 2020년과 지난해 각각 초연과 재연으로 관객과 만났다. 이번 삼연에서는 윤제문을 비롯해 유용, 서은지, 김소율, 허동수, 편준의, 송민주, 김신영, 김도형, 이진홍, 윤감송, 김진석, 김닥연, 윤예슬 등이 함께한다.


‘라이어’는 기막힌 거짓과 어설픈 진실, 거짓말이 갖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속고 속이는 해프닝과 인간사를 보여주며 통렬한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영국의 인기 극작가 겸 연출가 레이 쿠니‘(Ray Cooney)의 대표작 ‘Run for Your Wife’을 원작으로, 한국에선 1998년 초연된 이후 28년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구미식’과 ‘대학살의 신’은 의도치 않게 현실과 맞닿아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 ‘대학살의 신’은 고상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그린다. 물리적 살인은 아니더라도, 욕심과 탐욕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고 짓밟는 확장된 의미의 ‘학살’을 일깨우는 과정은 한 편의 시트콤을 보듯 통쾌하면서도 난장판이 된 마지막 장면은 현 시대의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구미식’은 산업근대화를 부흥과 쇠락을 상정하는 시간이자 동시대의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환유하는 상징의 공간인 가상의 지방도시 구미시를 배경으로, 약물의 영향을 받아 환각 속에서 경험하는 내면의 탐험과 현실 왜곡을 다룬다. 마약 중독자인 톰 윌리엄스가 겪게 되는 혼란스러운 내면은 2025년 대한민국 사회가 처한 초현실적인 상황과 닿아 있다.


코미디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웃음을 통해 현실을 반추하고 비판하는 예술 장르로서, 혼란한 시대 속에서 사회적 풍자와 해학을 통해 불안한 현실을 조명하고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꼭 ‘풍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더라도 웃음을 통해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는 공감과 연대감 형성 등의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장진 감독은 “좋은 코미디는 그 어떤 장르보다도 시대를 아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시기일 때마다 코미디는 날카로운 풍자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통쾌함 등 안에서 지금을 얘기하고자 한다. 모든 풍자는 권력 집단, 힘 있는 자를 향하게 돼 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같은 세상에서 코미디가 빛을 발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이 사회 구성원들이 극장에서 내 코미디를 보고 웃는다면 이 사회가 갖고 있던 어떤 사이를 그나마 좀 좁혔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지금 만드는 이 작품, 코미디의 최종 도달 지점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공공적, 공익적인 요소다. 작품을 보면서 느낀 심정의 동일함으로 그나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같이 읽고 나가지 않을까 한다. 조금 너그럽게 표현하자는 마음, 그게 이런 시대에 코미디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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