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최초 픽업트럭 '타스만' 시승기
강력한 디자인, 온로드선 무난한 일상용 픽업
5000만원대에 이런 기능이… '극강의' 오프로더
실용성 높인 곳곳 수납함… 알뜰살뜰 다 챙겼다
기아 타스만이 무쏘 스포츠와 무쏘 스포츠칸(렉스턴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칸)으로 정의되던 '적당한 픽업트럭'의 선택지에 흙바람을 몰고 등장했다. 거슬리는 경쟁자였던 쉐보레 콜로라도가 돌연 7000만원대로 몸값을 높이며 알아서 경쟁구도에서 빠져줬으니 사실상 KGM과의 일대일 매치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마니아층을 단단하게 구축했던 모하비에 이어 유일한 프레임 바디 모델이란 상징성을 이어갈 주자란 점은 타스만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요소다. 타스만은 '국내 대표 픽업'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까.
기아 타스만을 직접 시승해봤다. 강원도 인제 부근의 박달고치 임도 코스와 약 70km의 온로드 코스, 총 7개의 오프로드 코스까지 골고루 달려봤다. 온로드 주행에선 타스만 익스트림 트림을, 오프로드와 임도 코스에선 X-프로 트림을 시승했으며, 가격은 각각 5230만원, 5595만원이다.
세번 보니까 정 드는 얼굴. 타스만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공개됐을 때는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광고 영상으로 두번째 봤을 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세번째 마주하고 나니 꽤 멋있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보다.
첫인상부터 감동을 주기 어려운 건 몸집에 비해 작다싶은 그릴의 영향이 크다. 몸뚱이만 보면 대단히 강렬한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기아 로고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타이거 페이스 그릴이 예상보다 작게 배치돼 애매한 얼굴을 갖게 됐다. 최근 쏘렌토, 카니발 등 인기 모델의 그릴 크기를 자꾸만 키우고 있는 기아가 무슨일인지 타스만에선 상반된 전략을 택했다.
양쪽의 헤드램프 역시 SUV 주요 모델에서는 큼지막하게 배치해놓고 타스만에선 얇게 처리되면서 또 한번 의문을 자아낸다. 헤드램프든, 그릴이든 뭐 하나는 웅장하게 크기를 키웠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전 매력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는 고도의 전략이었다면 성공적이긴 하다.
그래도 측면에선 기대에 걸맞는 전형적인 픽업트럭의 형상이 펼쳐지며 만족감을 더한다. 경쟁모델인 KGM 렉스턴 스포츠칸이 전면 유리와 후면유리가 완만하게 떨어지며 모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타스만의 경우 경사를 최대한 가파르게 처리해 더 섹시하고 스포티한 느낌을 자아낸다.
픽업트럭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후면은 전면의 작은 헤드램프를 계승이라도 하듯 옹졸한 리어램프가 탑재되며 통일성을 이뤘다. 리어램프의 희생 덕에 등짝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꽉 채운 'KIA'가 시선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됐다. 아쉬운 점은 대문짝만하게 쓰여진 KIA 아래 TASMAN이 또 적혀있다는 건데, 개인적으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편이 더 깔끔했을 듯 하다.
호불호가 갈리기 충분한 얼굴이지만, 분명 매력은 있다. 그간 미국 태생 픽업트럭들이 주입시킨 불량스럽고 험상궂은 인상을 따르지않고,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무쏘 스포츠와 무쏘 스포츠칸이 혼자 개척해왔던 'K-픽업'의 영역에 기아가 힘을 실어준 것 같기도 하다.
내부로 들어서면 기아가 만든 픽업트럭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시대에 뒤처지는 내부를 투박함으로 포장해온 미국 픽업에선 구경도 못했던, 쾌적한 공간과 최신식 기술이 타스만에선 당연하다는 듯 탑재됐다.
소재 하나하나 부터 눈길이 간다. 대단히 고급스러운 소재로 마감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부족하거나 아쉽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벌집 모양으로 시원하게 디자인한 통풍구와 트림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 곳곳의 소재 등에서 신경쓴 티가 팍팍 난다. 예쁜 내부는 포기해야했던 픽업이라는 특수 장르 안에서 나름대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해낸 듯 하다.
디스플레이는 계기판부터 중앙부까지 길게 이어진 파노라믹 디스플레이가 탑재됐는데,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 중간의 남는 공간을 또 공조 조절 기능으로 채웠다. EV9에서나 들어갔던 기술이 가격대론 하위급인 타스만에 탑재된 것이다. 그 아래에는 히든 타입 터치 버튼으로 미디어, 맵, 설정 등 기능을 배치했고, 공조 조절과 음량 등 직관적 조작이 필요한 기능은 물리버튼으로 살렸다.
편의성을 위해 곳곳에 배치한 수납함과 신기술도 센스만점이다. 디스플레이 우측으로 마련된 수납함은 공간 자체는 크지 않지만 길쭉하게 배치돼 나름대로 유용하다. 휴대폰을 올려놓기에도, 주행 중 발생한 쓰레기를 모아두기에도, 조수석에 태운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는 로맨틱함을 발산하기에도 좋겠다.
기아 최초로 탑재된 콘솔 테이블은 차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한 혁신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엔 접어놓고 팔걸이로 쓰다가 필요할 때 앞으로 펼치면 되는 형식인데, 밥을 먹을 때나, 노트북 등을 올려놓고 업무를 볼 때도 매우 편리할 듯 하다.
2열은 '내부 공간 뽑기 귀신'으로 정평이 난 기아가 이번에도 성공해냈음을 잘 보여준다. 픽업트럭 특성상 2열 공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고 시트를 젖히기 어려워 짐칸으로 쓰는 것이 통상적인데, 기아가 이 어려운 걸 또 해냈다.
160cm 여성 기준 레그룸은 주먹 하나가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여유있고, 전동식은 아니지만 시트 하단의 레버를 통해 리클라이닝까지 할 수 있다. 픽업트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만끽하는 2열 리클라이닝은 제네시스에서 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타스만의 내외부에서 매력을 못 느꼈다면 안전벨트를 서둘러 착용하기를 권한다. 타스만의 진짜 매력은 가속페달을 밟고 난 이후 부터다. 픽업트럭이라면 기본인 프레임 바디를 내세워 튼튼한 하체만 강조하던 그간의 픽업은 단번에 잊게해줄 '섬세함'까지 고루 갖췄다.
타스만은 기아의 유일한 프레임 바디 모델이자, 작년 단종 수순을 밟은 모하비가 남기는 유산이란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많은 아빠들의 사랑을 받았던 모하비의 프레임바디를 기반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뼈대가 타스만에 탑재됐고, 개발과정에서 거쳤던 시험만 무려 1만8000회, 테스트 종류 역시 1777종에 달한다.
모하비가 '튼튼한 패밀리카'를 목적으로 하고 부전공으로 오프로드를 곁들였다면, 타스만은 아예 오프로드를 주전공으로 택했다. 오프로드 성능은 기본적으로 갖출테니 패밀리카로 쓰든, 오프로드 전용으로 쓰든 선택은 소비자에게 맡기겠다는 야수의 심장을 장착한 셈이다.
오프로드 주전공자 답게 타스만은 이날 마련된 갖가지 험로를 '아주 가뿐히' 주파해냈다. 600mm 깊이의 강에서도, 눈이 녹아 잔뜩 미끄러워진 진흙 구간도, 35도로 기울어진 높은 경사각의 사이드힐에서도, 바퀴가 허공에 들리는 최악의 노면에서도 눈하나 깜짝 않고 돌아낸다.헤드램프가 작은건 '눈감고도 지나갈 수 있다'는 무언의 자신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특히 양쪽 바퀴가 제각기 다른 언덕을 끊임없이 주파해야하는 범피(Bumpe) 구간에선 타스만의 근본 있는 오프로드 실력이 제대로 드러났다. 먼저 범피 구간을 지나는 앞 차를 보며 단단히 흔들릴 각오를 하고 코스에 들어섰건만, 타스만은 마치 방지턱을 넘는 듯 콧방귀를 뀌며 순조롭게 주파해냈다. 밖에서 보기엔 차 안에서 헤드뱅잉이라도 하고 있을 것 처럼 보이지만, 호들갑을 떤 것이 민망해질 정도로 가뿐하게 운전자를 안심시킨다.
타스만의 '오프로드 진심'은 프레임 바디 모델들이 내뱉는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라, 철저하고 섬세한 기능에서 나온다.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트림인 타스만 X-프로 모델에는 디스플레이에서 차량 전방 하부를 비춰주는 '그라운드 뷰 모니터'가 기본 탑재돼있는데, 렉서스 LX700h, 벤츠 지바겐 등 억소리 나는 고급 오프로더에나 들어가던 기능이다. 5000만원대에서 누려도 되는 건지, 황송함까지 느껴진다.
이 기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오프로드 주행에서 자신감의 차이로 이어진다. 전방 시야를 기반으로 양쪽 바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 바퀴의 위치와 차량 하부 및 노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 앞 차가 지나간 길을 이 화면에만 의지하고도 정확히 따라갈 수 있다. 작은 언덕마저 커다란 산 처럼 보이는 오프로드 주행에서의 제한된 시야에선 단비같은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오프로드 노면을 주행하는 'X-트렉' 기능도 탑재됐다. 오프로드 전용 크루즈컨트롤인 셈인데, 이 역시 고급 수입 오프로더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기능이다. 속도를 조금만 더 내더라도 바퀴가 미끄러질 수 있고, 갑작스럽게 멈췄다간 바퀴가 빠질 수 있는 험악한 환경에서 아주 똑부러지게 일을 해낸다. 2주 전 렉서스 LX700h를 시승하며 '역시 비싼 모델은 다르다'고 박수쳤던 기능들이 5000만원대 타스만에서 그대로 구현된 건데, '가성비'라는 단어는 타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대신 온로드에서의 편안한 주행감은 기꺼이 양보하는 마음 씀씀이를 갖는 게 좋겠다. 프레임 바디를 기반으로 한 대중 브랜드의 픽업트럭은 안정감있고 조용한 주행을 구현하기 위해 힘을 쏟을 여력이 부족했던 듯 하다. 1억 이상 저렴하게 고급 오프로드 기능을 얻고, 온로드 주행감을 양보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밟을 때마다 고함을 지르는 엔진소리는 기름 냄새를 잔뜩 풍기는 마초를 지향한다면 만족스러울 수 있겠으나, 음악 소리가 묻힐 정도로 강력하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이중접합 유리를 탑재했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조용한 놈은 아니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굼뜨거나 주저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다. 좀 시끄러울 뿐이지, 거대한 몸을 하고도 밟는 족족 시원시원하게 내달린다. 차선 변경이나 코너링 구간에서도 긴 차체가 민첩하게 운전자의 지시를 곧잘 따라와준다. 타스만은 가솔린 2.5 터보 엔진과 8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해 최고 출력 281마력(PS), 최대 토크 43.0kgf·m를 발휘한다.
기름냄새를 풀풀 풍기는 '진짜 픽업트럭'을 지향하는 만큼 연비 역시도 초연해야하는 영역이다. 이날 시승 후 확인한 연비는 5.1km/L. 제원상 복합연비는 17인치 휠 2WD 기준 8.6km/L다. 하이브리드가 기본인 시대라지만, 프레임바디에 하이브리드까지 기대하려면 현재로선 렉서스까지 눈을 높여야 하니 현실과 타협하는 자세가 중요하겠다.
시승을 마치고 난 후, 미국 픽업의 주입식 교육에 세뇌당해 타스만이 못생겼다고 생각한 과거를 반성하기로 했다. 기아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건 처음 만들어 본 픽업트럭이 타스만이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것이 아닐까. 이쯤 되니 경쟁자는 KGM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타깃
-저렴한데 성능도 포기 못해! 욕심쟁이들 주목
-모하비 그리워 중고차 사이트 전전하던 찐팬들이여, 오라!
▲주의할 점
-뒷좌석에서 아빠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놓칠 수도
-전기차 시대에 고른 내연기관 픽업… 기름값은 각오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