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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손잡았다”...포스코·현대제철, 철강판 ‘원팀’의 역사


입력 2025.04.14 11:51 수정 2025.04.14 11:51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미국 제철소 협력 추진...양강 연대 다시 주목

위기 속 공감대...공급과잉·환경규제 공동 대응

ESG까지 협력 전선 구축...복구 현장서도 동행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전경.ⓒ포스코홀딩스

국내 철강업계 1·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관세 장벽이라는 공통 과제 앞에서 다시 한 번 손을 맞잡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두 회사는 산업 위기와 환경 규제 등 중대한 전환기마다 경쟁보다 공조를 택해왔다. 대내외 충격이 거셀수록 철강 산업의 ‘양강’ 구도는 오히려 연대의 무대로 바뀌곤 했다.


1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격변하는 글로벌 철강 환경 속에서 ‘합종연횡’으로 대응해온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과거 협력 사례들이 주목 받고 있다.


최근 양사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에 건설 예정인 일관제철소 투자 프로젝트에서 협력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은 이곳에 약 8조5000억원을 들여 연산 270만 톤 규모 전기로 기반 제철소를 2029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일정 물량 확보를 조건으로 재무적 투자자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25% 철강 관세를 회피하고 현지 대응력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미국 사업과 관련해서는 전략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놓고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논의는 양사가 위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구축해온 협력의 연장선에 있다. 두 회사는 외부 리스크가 닥칠 때마다 경쟁을 접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첫 공동 대응은 2015년 중국산 철강재 수입이 급증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저가재 공세에 맞서 대응재를 출시하고 품질 인증제 강화와 건설기술관리법 개정, 반덤핑 제소 등을 함께 추진했다.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던 두 회사가 공공의 적 앞에서 나란히 선 순간이었다. 이 시기 포스코는 현대제철의 판재 시장 진입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으로 내수 경쟁에 직면해 있었지만 외부 위기 앞에서는 태도를 전환해 협력에 나섰다.


2010년대 후반에는 공급과잉 장기화와 글로벌 가격 하락이 겹치며 출혈 경쟁 자제가 양사 간 묵시적 공감대로 자리 잡았다. 협력의 방식도 계속 진화됐다. 2021년에는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광양항과 평택·당진항 연안해운 인프라를 공유하며 복화운송 체계를 도입했다. 코일로로선과 전용선을 교차 활용해 연간 3000톤의 탄소배출을 줄였고 이는 업계에서 ‘경쟁을 넘어선 물류 파트너십’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현대제철

2022년 당진제철소 1고로 신예화 작업도 인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현대제철은 고로 개수를 위한 내화물 작업 파트너로 경쟁사 그룹사인 포스코케미칼을 선택했다. 고온 내구성과 시공 기술에서 경쟁사의 역량을 인정하고 협력을 결정한 것이다. 앞서 그해 9월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침수 피해를 입자 현대제철이 자사 용선운반차 5기를 긴급 지원하며 복구에 힘을 보탰다.


탈탄소 전환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 등 환경 규제 강화 국면에서도 양사는 사실상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과정에서 협력하고 철강협회를 통해 탄소 규제 대응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며 탈탄소화 기술 공유에도 나섰다. 최근에는 포스코의 전기로 확대 전략과 현대제철의 북미 진출 기조가 맞물리며 양사 간 전략적 접점이 확대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협력도 강화됐다. 포스코그룹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자회사 엔투비에는 2021년 현대제철과 세아제강 등이 고객사로 참여해 공동 구매와 ESG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코로나19 위기 당시에는 양사가 공동으로 철강상생펀드를 조성해 총 1000억원 규모의 긴급 대출을 실행했고 6개월 만에 자금이 조기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컸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실용적 협력이 이뤄졌다. 2015년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강사 아르셀로미탈과 기술·마케팅 연대를 추진해 냉연·열연강 제품을 글로벌 유통망에 공급했다. 적대적 인수 위협까지 있었던 경쟁사와도 전략적 실익을 위해 손을 잡은 사례다.


이처럼 철강사들의 협력은 산업 보호주의와 환경 규제, 고정비 부담 등 구조적 변수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제철소 투자 논의 역시 단순한 현지화 전략을 넘어 고관세 회피와 공급망 안정화, 통상 리스크 분산까지 염두에 둔 대응으로 해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사실상 국가 전략 산업이라는 인식 아래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제철소 신설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시기일수록 자본과 부담을 나누고 통상 환경에서의 교섭력을 함께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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