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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에서 괴물로…문화예술계 성추문 '몰락'


입력 2018.02.23 06:00 수정 2018.02.25 09:21        부수정 기자

문단 시작…예술계 전반 확산

남녀 넘어 상하 권력 문제

극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전 감독이 성추문에 휩싸였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극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전 감독이 성추문에 휩싸였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문단 시작…예술계 전반 확산
남녀 넘어 상하 권력 문제


"그는 괴물입니다."

문화예술계가 성추문으로 발칵 뒤집혔다. 성폭력 피해 고발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의 확산으로, 문화계 거물들의 추악한 행태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중은 충격에 빠졌고, 피해자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로 촉발됐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발로 시작된 '미투'가 문화예술계까지 퍼진 것이다.

문단 내 성추행을 고발하는 시 '괴물'로 주목을 받은 최 시인은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낱낱이 폭로했다.

최 시인은 "그 문인이 내가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습범이고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데뷔할 때부터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대한민국 도처에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털어놨다.

다음 날 시인 류근은 시인 '괴물'의 당사자가 시인 고은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몰랐다고? 놀랍고 지겹다. 60~70년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다.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논란이 불거졌으나 고은 시인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국민적인 관심을 받은 고은 시인의 성추문에 대중은 실망을 넘어 경악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원로 연출가 오태석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이하 목화) 대표가 성추문에 휩싸였다.ⓒ연합뉴스 원로 연출가 오태석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이하 목화) 대표가 성추문에 휩싸였다.ⓒ연합뉴스

성추문은 연극계로 번졌다.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이윤택 극단 연희단거리패 전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전 감독이 안마와 성적 행위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전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나왔고, 이 전 감독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밝히면서도, 성폭행에 대해선 "강제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오동식 배우 겸 연출가는 21일 페이스북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그간 연희단거리패에서 해당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했던 정황을 공개했다.

이 전 감독과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단원들에게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동향 체크를 지시하며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기자회견도 '리허설까지 한 연극'이었다고 전했다.

이윤택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원로 연출가 오태석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이하 목화) 대표에 대한 성추행 폭로도 나왔다.

극단 '공상집단 뚱단지'의 황이선 연출가는 지난 18일 자신의 SNS에 오 연출가로 추정되는 '연극계 대가'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고, 연극계에서 활동했다는 여성 A씨도 "오태석이 '백마강 달밤에' 연극 뒤풀이에서 내 허벅지를 주무르고 쓰다듬었다"고 폭로했다.

잇따른 성추행 폭로에 오태석은 극단을 통해 "20일 입장 발표를 하겠다"고 했지만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미뤘다. 오 연출가는 지난 16일을 마지막으로 연극 '템페스트'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외부 접촉을 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조민기가 여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파문이다.ⓒ윌엔터테인먼트 배우 조민기가 여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파문이다.ⓒ윌엔터테인먼트

대중이 가장 충격받은 사건은 배우 조민기 성추문이다.

2010년 청주대 연극학과 조교수로 부임해 8년째 강단에 섰다. 여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그는 처음엔 "성추행 관련 내용은 명백한 루머"라며 발끈했으나,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이 속속 나오자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특히 조민기는 딸과 함께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자상한 딸 바보 면모를 보여준 바 있어 대중이 느끼는 충격은 더 컸다. "가슴으로 연기하려고 손으로 툭 쳤다"는 해명은 화를 더 키웠다. 누리꾼들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괴물이다"며 분노했다.

조민기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청주대는 28일 조민기를 교수직에서 면직 처분할 예정이다.

이번 성추문 사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성범죄를 묵인해온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왕'으로 불리는 문화 권력을 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며, 이들은 예술이 한 명의 커리어와 생사를 좌지우지할 만큼 절대 권력을 지닌다. 이런 폐쇄적인 구조 탓에 피해자들이 경제적 불안정성과 보복을 두려워해 신고를 꺼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가해자들이 남성 권력자들이다 보니 피해자들이나 주변인들이 문제 제기했다가 보복당한다는 두려움에 성범죄를 암묵적으로 묵인했다"며 "이런 게 관행으로 굳어졌고, 주변인들조차 윤리의식이 마비돼 성범죄를 큰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투 운동은 남녀 문제를 넘어 상하 권력 문제"라며 "가해자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거나,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보면 안 된다.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사회적인 연대가 생겨나고, 가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지금보다 더 정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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