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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덫-유통⑤]사드에 멍든 화장품업계…'규제개선' 귀막은 정부


입력 2018.08.16 06:00 수정 2018.08.16 06:08        손현진 기자

'한한령'에 화장품 내수시장 위기감…규제 강화에 깊어지는 업계 후유증

우리나라만 유독 엄격한 표시규정…해외 브랜드와 형평성도 어긋

정부의 규제 법안이 사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 '손톱 밑 가시'가 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 매장에 중국 단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모습. ⓒ데일리안DB 정부의 규제 법안이 사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 '손톱 밑 가시'가 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 매장에 중국 단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모습. ⓒ데일리안DB

현실과 엇박자를 내는 정부의 규제 법안이 국내 화장품 업계에 '손톱 밑 가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후유증이 여전한 화장품 내수시장에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 화장품은 아시아 최대 화장품 시장인 중국에서 1990년대 이래 큰 사랑을 받으며 한류의 위상을 높였지만 한·중간 격화된 사드 갈등은 사태를 반전시켰다. 급기야 중국 정부가 지난해 시행한 한한령(한류 제한령)으로 관광객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화장품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화장품 시장에는 위기감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현 정부는 규제 강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전 정권에서 생활화학용품의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던 전례도 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화장품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아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규제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선 효능 표시 및 광고에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높다. 현행 화장품법은 소비자가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광고와 표기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여드름성 피부에 적합하다'는 표현은 허용되지만 '여드름 완화에 도움된다'는 문구는 쓸 수 없다. '초기 염증 완화'나 '뾰루지를 개선한다' 등 제품 특성을 강조하는 문구도 금지된다.

이처럼 까다로운 표시규정이 국내외 기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국내 업체가 광고 표시법 위반으로 적발되면 즉시 소명해야 하지만, 해외 브랜드는 본사에서 소명 자료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당국이 좀 더 기다려준다"며 "같은 잘못을 했는데 우리만 처벌 받았다며 대리점주들이 항의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최한 화장품 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도 표시규정과 관련된 건의 사항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한 기업인은 "새로운 표시규정을 적용하는 시기를 유연하게 바꿔 달라"고 말했다. 규정 변화에 맞춰 생산한 제품이 재고로 쌓이는 것을 방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류영진 식약처장은 '애로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현장 목소리를 담은 정책보다는 기업활동을 관리 감독하는 법안만 빠르게 늘었다.

올 상반기 영유아 대상 화장품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취지에서 성분 함량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고, 광고업무 정지 기간에 광고한 경우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이 신설됐다.

지난 5월에는 화장품에 위험 경고 표시를 부착하고, 매장에서 판매할 때 두께 1㎜ 이상의 철제 캐비닛에 보관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예고돼 업계가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뒤늦게 청와대가 수습해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부 방침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시장 변화에 발맞춘 정책도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한 중소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새로운 기능을 가진 화장품이 나날이 등장하면서 신설되는 카테고리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현행법은 특정 기능이 있다고 표현하려면 수천만원의 시험비를 들여 증빙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을 제외하면 비싼 인증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중소기업이 아이디어만으로 성공신화를 쓸 수 없는 구조다"라며 "업계가 문제를 감당하도록 사태를 방치하는 건 아닌지, 논란이 생긴 뒤에야 미흡한 가이드라인을 보완하는 건 아닌지 정부에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손현진 기자 (sonso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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