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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상주의는 배타주의‧투쟁주의와 동의어다


입력 2018.09.03 11:18 수정 2018.09.03 11:2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 지금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미‧북 사이 중재 어떻게 했기에

“북한의 잔혹한 정체성 안 변해”…공산주의자 아닌 것은 좋은데

<칼럼> 지금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미‧북 사이 중재 어떻게 했기에
“북한의 잔혹한 정체성 안 변해”…공산주의자 아닌 것은 좋은데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5명의 대북 특사단을 5일 평양에 보낸다고 청와대가 2일 발표했다. 9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선 이미 지난달 13일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원칙적 합의를 이룬 바 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생겨난 균열을 매워보겠다는 뜻이겠다. 미‧북 핵협상과 관련,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위기이자 기회라고 여길 법하다.

그간 북한 김정은에 대해 좋은 말만 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관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어감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김정은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했지만 여차하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압박성 발언이었다고 하겠다.

미‧북 사이 중재 어떻게 했기에

김정은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가졌을 시점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낙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호기롭게 미‧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판문점선언 재확인 등 북한의 요구사항을 합의문의 앞쪽에 배치하는 여유를 보였을 것이다. ‘비핵화’는 부차적 과제인 것처럼 합의문 뒷부분에 포함시켰는데, 그것도 북한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노력한다’는 표현에 그쳤다.

비핵화를 이처럼 가볍게 다룬 저변에는 문 대통령의 활약(?)이 있었을 수도 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언급이 주는 느낌으로는 그렇다. 문 대통령이 4‧27남북정상회담 때 ‘1년 내 비핵화’를 주문했고 김정은이 수락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했을 것이고, 트럼프는 그 말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보증쯤으로 여겨 아주 편한 마음으로 미‧북정상회담을 하고 합의문에 서명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1년 내 비핵화’ 이행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미국이 대단한 걸 줄 것처럼 하더니 왜 엉뚱한 말, 그러니까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하느냐고 되레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이 “우리에게 뭔가를 기꺼이 줄 생각이 없다면 오지 말라”는 편지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사태까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말이 엇나가게 된 전말을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거나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한 마디 말이 없다. 볼턴 보좌관의 말이 사실인지, 김정은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이 만족할만한 보상을 할 것이라고 했는지를 밝혀야 옳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전반이 다 난해하다. 이쪽에 한 말, 저쪽에 한 말을 명확히 정리해서 밝히면 미‧북 간의 오해가 풀리고 다시 대화가 진전될 수 있을 텐데 문 대통령은 이렇다 할 해명 없이 북한에 특사단 파견만 서둘렀다. 남‧북한이 먼저 만나 미국을 설득 혹은 압박할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지 않은가. 그게 아니면 혹 미국으로부터 중재자‧촉진자의 역할을 보다 역동적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북한의 잔혹한 정체성 안 변해”

우리가 군 복무기간을 줄이고, 병력을 감축하고, 휴전선 경계 태세를 이완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는 확고한 보장을 받았는지도 알고 싶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우리가 북한을 못 도와서 안달하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해줘야 한다. 민족끼리 돕자는 뜻이라고 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북한 김 씨 왕조는 ‘민족끼리’의 대상일 수가 없다. 북한 동포들에게 폭정과 학살을 일삼는 집단이 어떻게 우리민족일 수 있겠는가.

지난 1일 미국의 소리 방송(VOA)이 악명 높은 북한의 청진 25호 정치범수용소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그 면적이 72%나 확장됐다고 한다. 그래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 한국과 정상회담을 몇 번 했다고 북한 정권의 잔혹한 정체성이 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범 수용소! 이것이 북한 김정은 체제의 민낯이다.

혹시라도 북한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못했으니 북한정권의 주민학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2011년 6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면서도 “정부 발표를 신뢰하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직접 보지 않은 건 확신할 수 없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한다면 법원은 아무런 판결도 내릴 수 없다. 북한 김정은이 독재자이고 사이비 교주 같은 자임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는 식의 궤변으로 북한을 역성들 사람이 있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북한 석탄 수입 논란에 대한 정부의 의심스러운 태도, 남북철도 연결 및 시범운행의 집요한 시도, 남북연락사무소 월초 개소 강행 등도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일방적 지원 의지다. 그 때문에 미국과 사이에 불편한 말이 오가지만 문 대통령은 그럴수록 오히려 더 김정은에게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다. 9월 9일이 북한 정권 창건일이라는데 하필이면 9월 안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겠다는 식으로….

국가안보의 컨트롤타워라는 정 국가안보실장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이미 정당 대표들에게 주문한 일이지만 범정부적으로 비준을 압박하는 의도 또한 의아하다. 국회가 비준하는 것은 우리의 대북지원을 법제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일단 비준이 되면 이야 말로 불가역적인 의무가 되고 만다. 문 대통령 임기 후에도 대북 지원이 계속되도록 대못을 박아두자는 것인가.

문 대통령이 해결을 특히 서두르는 또 하나의 과제는 ‘종전선언’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문-김 종전선언’ 이라는 문건이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단지 평화의지의 표명’일뿐이라며 기어이 해치울 것 같은 분위기다. ‘종전선언’ 역시 불가역적인 덤터기가 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달 29일 미국의 시사매체 ‘애틀랜틱’에 “종전선언은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되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던데 이 말은 진실이기 어렵다.

공산주의자 아닌 것은 좋은데

물론 문-김 종전선언은 그냥 선언일 뿐이다. 그렇지만 일단 이 고삐를 쥐게 되면 북한은 끝없이 죄어들 게 뻔하다. 그것이 북한식의 협상방식이다. 그간의 남북회담 또는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거듭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종전선언’이 성립하는 순간 북한은 사실상의 종전 및 평화협정이라고 우겨댈 것이다.

문 특보는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문제 등과 별개”라고 말했다지만 그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요구는 북한 김정은이 한다. “유엔사 해체하라, 미군 철수하라, 한미군사동맹 폐지하라.” 그는 이를 비핵화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게 마련이다. 그 때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북한이 요구하면 어쩐지 문 대통령은 들어주려 애쓸 것 같다.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됐었다. 이 말은 문 대통령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그건 그 자신도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가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심정적으로 북한 사회주의체제 및 그곳 사회주의자들과 연대의식을 가졌을지 모른다. 물론 그것도 아니라고 해 주기를 바란다. 오직 ‘민족애’의 발로라면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고 전 이사장은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데 이 점을 감안해서 공산주의자 혹은 북한식 사회주의자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할 일이다. 고소 고발을 해 봐야 비판자들을 감옥에 넣기는 어려울 테니까.

우리는 현실적으로 북한과 무력대치를 하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이 최우선적으로 주목하고 감시해야 할 상대는 당연히 북한이다. 그런데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이 대북 사절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때도 국정원장이 대북 메신저 역할을 하더니 다시 그 체제다.

이런 식으로 북한 김정은 체제와의 거리를 좁혀 가면 그 끝에 평화통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세월이 좀 지나면 어느새 김정은은 개과천선해 있고, 그를 추종하며 북한 주민들을 학대하는 지배세력들이 다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 것인가. 그걸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대북 방어망에 구멍을 내지 마시라.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 미국은 외세이고, 민족문제는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 민족문제라는 것은 한민족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것인가? 지금과 같은 구도 하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무모한 모험이다. 민족지상주의는 배타주의이고 투쟁주의와 동의어다. 우리는 민족국가가 아닌 국민국가에서 민족이 아닌 국민의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민족 우선이 아닌 국민 우선의 정치리더십을 기대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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