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하루라도 빨리 개경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른 지 한 달 남짓 지난 서기 1392년 8월에 이미 한양으로 도성을 옮기라는 지시를 내린다. 동북면의 함경도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다가 아버지 이자춘이 쌍성의 문을 열고 고려에 항복하면서 인질로서 개경에서 지내게 된다. 대략 20대 초반이었는데 격구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공민왕의 눈에 띄기도 했지만 고향인 화령에 대한 애착이 더 컸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묻힌 건원릉은 고향에서 가져온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고, 역시 고향에서 자라는 갈대를 그 위에 심었다. 하지만 이런 이성계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신들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했다. 심지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할 때 손발이 딱딱 맞았던 개국 공신들조차 천도 문제에 있어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짜증을 내지 못하고 속으로 화를 삭이던 이성계에게 다음 해인 서기 1393년 1월, 70살의 노신인 권중화가 이성계에게 양광도의 계룡산 지도를 바쳤다. 도읍지도라는 명칭이 실록에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는 도읍 후보지로서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이성계는 권중화의 보고를 받은지 며칠 후에 직접 계룡산으로 가서 새로운 도읍지로 적당한지 알아보려고 했다. 이 행차에는 측근인 이지란과 남은 등이 동참했다. 아직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국호를 정하는 문제와 더불어 명나라가 승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이었는데 개경을 떠나기로 한 것은 그가 얼마나 도읍 이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성계의 속마음을 모르는 대신들의 방해공작은 그치지 않았다.
서기 1393년 2월 1일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아마 개경을 떠난 지 열흘쯤 지난 상황이라서 계룡산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것 같다. 여기서 나오는 현비는 이성계의 경처인 신덕왕후 강씨를 뜻한다. 이성계는 향처인 신의왕후 한씨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충분이 걱정할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덕왕후 강씨는 몇 년 후인 1396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건강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성계는 잠자코 넘어갔지만 다음 보고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평주는 지금의 황해도 평산군이며, 봉주는 역시 황해도의 봉산군으로 둘 다 개경과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서 초적, 그러니까 도적떼가 일어났으니 서둘러 돌아오는 게 좋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기쁜 표정을 짓지 않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초적이 나타났다는 보고는 어느 장수가 했고, 누가 보고했는 지였다.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는 것은 백전노장에 정치력 만렙인 이성계가 무슨 의도인지 알아차렸다는 것을 뜻한다. 예상대로 정요가 우물쭈물하자 이성계는 따라온 신하들에게 드디어 화를 낸다. 재상들이 오랫동안 개경에 살아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마땅찮게 여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이성계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한다.
측근인 남은이 자신이 남아서 초적을 치겠으니 행차를 계속하라고 건의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성계는 대신들의 속내를 꿰뚫는 말을 한다. 새로 건국한 나라는 반드시 도읍을 새로 옮겨야 하는데 개국군주인 자신에게도 이렇게 반대를 많이 하는데 후계자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반대를 할지 불 보듯 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어려운 문제는 본인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어가를 돌리게 한다. 만약 이대로 개경으로 돌아가면 무슨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짐작한 대신들은 필사적으로 만류한다. 결국 점까지 치는 소동을 벌인 끝에 신덕왕후 강씨의 병이 낫고 초적들도 알아서 소멸할 것이라는 점쾌가 나오면서 겨우 이성계를 달랜다.
계룡산에 도착해서 지세를 살펴본 이성계는 만족했는지 남은 등에게 성곽을 축조할 자리를 알아보라고 지시를 한다. 처음 계룡산을 도읍으로 지목한 권중화 등이 종묘와 궁궐이 세워질 자리가 그려진 지도를 바치자 실제 측량작업까지 지시한다. 그리고 계룡산을 떠나 개경으로 돌아오면서 관리들을 몇 명 남겨서 공사를 감독하도록 지시한다. 만약,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서울 특별시 대신 계룡 특별시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야 할 그해 12월, 태조 이성계는 대장군 심효생을 보내서 계룡산에서 진행 중인 공사를 멈추도록 지시한다. 바로 계룡산의 위치가 남쪽으로 너무 치우쳐있다는 하륜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동안, 이성계의 마음도 바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진짜 공사가 중단된 이유가 마지막 줄에 암시하듯 남아있다.
실록은 이렇게 아주 짧게 힌트를 남겨놓곤 한다. 실록을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명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