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악순환 고리…실적악화→철수설→판매부진
철수설 부추겨 소비자 불안 가중…오히려 철수 종용하는 꼴
철수설 부추겨 소비자 불안 가중…오히려 철수 종용하는 꼴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43)는 최근 쉐보레 말리부를 구입하려다 생각을 바꿔 경쟁사의 동급 차종으로 결정했다. 신형 말리부가 출시됐을 때부터 디자인이 끌렸고 최근에는 큰 폭의 할인까지 진행해 좋은 기회라 생각됐지만 제작사인 한국지엠 철수설이 나돌면서 찜찜한 생각에 마음을 접은 것이다.
한국지엠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지난 수년 간의 실적악화가 군산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철수설에 휘말렸다. 대주주인 GM과 산업은행의 협약으로 간신히 경영정상화의 실마리를 잡고 신차를 내놓으며 재기에 나섰지만 연구개발(R&D) 법인 분리를 계기로 또 다시 철수설에 휘말려 판매부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에서의 판매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GM 본사도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이 본격적으로 적자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2013년 소폭 흑자를 냈지만 이후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달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기간 누적 적자만 2조5000억원이 넘는다.
올해 실적은 더 심각하다. 연말까지 1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지난해 8386억원의 적자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동안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GM 본사로부터의 고금리 대출, GM 본사와의 불평등 거래(고가 부품매입 및 저가 완성차 판매) 등 여러 가지가 지목됐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판매 부진이다.
생산능력만큼 판매가 따라주질 못하니 인건비 등 고정비는 늘어나고 유휴 시설과 인력을 정리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지엠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내수판매 회복이다. 수출 비중이 더 높긴 하지만 수출과 직결되는 해외시장 물량 배정은 GM 본사의 소관이다.
문제는 철수설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이슈가 자동차 업체에게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도 아니고 5년, 10년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업체에게 구매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2월 이후 4개월간 내수 판매실적에서 전년 동월 대비 반토막을 면치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월 GM과 산은이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지원에 합의하면서 철수설은 잦아드는 듯 했다. 한국지엠도 신차 에퀴녹스를 출시하며 실적 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2~4월 5000~6000대 수준에 머물던 내수 판매도 5월 7000여대, 6~7월 9000대 이상까지 회복됐다. 8월과 9월은 다시 7000여대로 내려앉았지만 각각 여름휴가와 추석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 영향이 컸다.
하지만 노조가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법인분리가 한국 철수의 사전작업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달 국정감사에서 GM의 한국 철수를 기정사실화 하는 발언들이 쏟아지며 실적 회복을 위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될 위기에 놓였다.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한국지엠 영업소로 향하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 한국지엠을 철수로 내모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산은이 GM이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계획을 약속대로 이행하는지 철저히 감시할 필요는 있지만 극단적인 가정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정치권에서 철수설을 부추겨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GM에 한국지엠을 청산하고 나가라고 종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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