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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피하는 토종 유니콘···“하더라도 해외로”


입력 2020.01.28 06:00 수정 2020.01.28 10:03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11개 유니콘 국내증시 입성 전무...쿠팡 나스닥 상장 힘 실려

상장 문턱 낮춰도 외면...“낮은 가격·경영권 방어 못해 주저”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거래소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거래소

토종 유니콘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현재 국내에는 11개의 유니콘 기업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 중 국내 증시에 입성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국내 상장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해외 엑시트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니콘 1호인 쿠팡이 내년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국내 시장에 파장이 예상된다. 쿠팡 측은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최근 미국의 유력 재무‧금융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나스닥 상장설에 힘을 실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이러한 쿠팡의 행보를 예정된 수순으로 인식해왔지만 앞서 국내 최대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우아한형제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밑에 있던 쿠팡의 상장 청사진까지 본격화되자 토종 유니콘의 국내 증시 외면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우아한형제들은 국내 상장 대신 최근 경쟁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달러(한화 4조7000억원)로 매각됐다. 앞서 한국거래소는 우아한형제들을 코스닥시장에 유치하기 위해 접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종합숙박·액티비티 예약 플랫폼인 ‘여기어때’도 지난해 9월 유럽 최대 사모펀드인 영국 CVC캐피탈로 3000억원에 팔렸다.


정부는 2017년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같은 우량기업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테슬라 요건 상장’ 제도를 만들었다. 당초 적자 기업은 증시에 입성할 수 없었지만 이젠 성장성만 있으면 상장할 수 있다. 또 중소기업만 신청 가능했던 기술특례 상장 대상을 유니콘 기업도 가능하도록 넓혔다. 그럼에도 국내 유니콘 기업 11개 중 아직 국내 증시에 상장된 곳은 없다.


야놀자와 지피클럽, 왓챠 등의 유니콘이 국내 증권사와 IPO 주관 계약을 맺은 상태지만 대체로 상장 작업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유니콘 기업의 해외 엑시트 행보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한국 유니콘 기업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가장 큰 배경에는 ‘제값’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예를 들어 DH가 인정한 배달의민족 기업가치 4조7500억원은 국내 IPO를 택했다면 연간 공모 규모 1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시장 규모와 구조상 그만한 기업가치가 책정될 수 없다.


아예 상장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않고 있는 경우도 대다수다. 일단 장외시장에서 벤처캐피털(VC)나 사모펀드(PEF) 등을 통해 자금을 수혈 받아 사업을 과감하게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기업은 또 국내 시장에 국한되기보다는 해외 시장에 진출해 투자자 저변을 넓히겠다는 욕구도 강하다.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환경 역시 토종 유니콘의 국내 증시 입성을 가로막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벤처 창업자가 외부 자금을 조달받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잃을 걱정 없이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해외 유니콘 기업들은 보유지분이 적은 창업자가 안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구조의 IPO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도입은 대기업의 편법 상속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작년 정부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국회에서 막혀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차등의결권 제도가 IPO와 맞물려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차등의결권 도입은 IPO와 맞물려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면서 “현재 정부는 벤처기업법의 개정을 통해 비상장 벤처기업에게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의 효과는 실질적으로 주식이 분산되는 IPO 이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등의결권 도입 방안에는 차등의결권 기업의 상장 조건 및 상장 이후 차등의결권 주식의 효력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유니콘 기업의 기업가치 산정 방식을 둘러싼 과대평가 논란도 여전하다. 국내 유니콘 절반가량이 아직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들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정말 괜찮은 기업이고 성장성 있는 업체라면 거래소가 잡아야하지만 유니콘 기업과 관련해 안 좋은 소리들도 많이 들리지 않나”면서 “증권사 IB들은 수익을 내야 하니까 서포트하고 주관사 계약을 맺으면서 추진하고 있는데 거래소 입장에서는 또 하자가 있는 기업을 잘못 상장시키면 문제만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유가증권시장을 목표로 상장이 논의되는 기업은 없고, 코스닥 쪽에서 계속 접촉하고 진행 중”이라며 “고민을 해봐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거래소는 올해 코스닥시장 진입제도를 미래 성장성 위주로 정비해 혁신 유니콘 기업의 상장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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