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銀 개인사업자 대출 241.9조…두 달 새 2.5조 불어
가계 빚 억제 정책 역효과…코로나 사태에 부실 우려↑
국내 5대 은행들이 자영업자들에게 내준 대출 규모가 올해 들어서만 2조5000억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가계 빚 규제가 강화되자 궁여지책으로 자영업자 대출에 눈을 돌리는 생계형 개인사업자들이 늘면서 풍선효과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들의 부채를 둘러싼 우려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5개 은행들이 보유한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총 241조9314억원으로 지난해 말(239조4193억원)보다 1.0%(2조5121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다소 격차는 있었지만 모든 곳들의 자영업자 대출이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국민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같은 기간 69조2215억원에서 69조7756억원으로 0.8%(5541억원) 늘었다. 신한은행 역시 46조7849억원에서 47조2595억원으로, 하나은행은 44조8320억원에서 45조436억원으로 각각 1.0%(4746억원)와 0.5%(2116억원)씩 자영업자 대출이 증가했다. 우리은행도 43조7145억원에서 44조550억원으로, 농협은행은 34조8664억원에서 35조7977억원으로 각각 0.8%(3405억원)와 2.7%(9313억원)씩 개인사업자 대출이 증가했다.
이 같은 주요 은행들의 자영업자 대출 증가 속도는 가계 대출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조사 대상 기간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610조7562억원에서 613조3080억원으로 0.4%(2조5518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개인사업자 대출과 비교하면 0.6%포인트 낮은 증가율이다.
결국 올해 들어 가계대출에는 다소 제동이 걸리고 있는 반면, 자영업자들의 빚은 꾸준히 확대되는 흐름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흐름의 배경으로 정책적 영향을 꼽는다. 정부가 지난해 부동산 시장 규제의 일환으로 가계대출의 핵심인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까지 틀어쥐면서 그 역풍이 개인사업자 대출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이는 개인사업자 대출이 분류 상 기업대출에 속해 가계부채 규제에서 한 발 빗겨나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생계형이 대다수인 국내 자영업의 특성 상 이들에 대한 대출은 사실상 가계 빚과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도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방안을 피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한 대출에서 영업의 활로를 찾고 있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점점 빚을 갚기 어려워하는 개인사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들이 이를 제 때 값지 못한 액수는 최근 1년 새에만 1000억원 가까이 불어난 상황이다. 국내 은행들이 개인사업자들에게 내준 대출 중 한 달 이상 상환이 밀린 금액은 지난해 3분기 말 1조1282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83억원) 대비 8.7%(899억)나 늘었다.
자영업자 대상 여신과 관련해 은행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은행들의 개인사업자 관련 고정이하여신은 같은 기간 1조1485억원에서 1조2065억원으로 5.1%(580억원)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3개월 넘게 연체된 금액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통상 부실채권을 구분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변수는 자영업자들에게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에 소비자들이 지갑이 닫히면서, 내수 경기에 의존하는 개인사업자들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벌써부터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9로 한 달 만에 7.3포인트 급락했다. CCSI는 소비자들이 경기를 어떻게 체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2003~2018년 장기평균을 기준값 100으로 삼아 산출된다. 이 수치가 100을 밑돌면 장기평균보다 소비자심리가 부정적임을 의미한다.
특히 올해 2월 CCSI 하락 폭은 2008년 조사 시작 이래 세 번째로 큰 기록이다. 더욱이 해당 조사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전인 지난 2월 10~17일에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이후 소비 심리는 더 하락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로 인해 가계대출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제한이 덜한 개인사업자대출로 수요가 쏠리는 모습"이라며 "자영업자 부채의 질 악화를 가계 빚과 떼 놓고 볼 수 없는 현실인 만큼, 정책이나 코로나19 등에 따른 리스크 확대가 금융권 여신 전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