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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그들은 왜 '임협'을 '임투'로 부르나


입력 2021.05.26 11:01 수정 2021.05.26 11:26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회사를 투쟁의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 일자리 지키려면 '투쟁' 부터 버려야

현대자동차 노사 임단협 교섭 장면(자료사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2021년 임투 승리를 위해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0년 투쟁의 역사 2021년 임투로 이어진다.”


올해 임금혐상(임협), 혹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앞두고 국내 완성차 업체 노동조합들이 내놓은 구호다. 하나같이 ‘투쟁’이 들어가 있고 임협·임단협 대신 임투·임단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측을 협상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으로 보고, 상생을 협의해나가기보다는 싸워서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구시대적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심지어 백여 년간 만들어 오던 내연기관 자동차를 포기하고 전기차로 전환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고,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경쟁자로 쳐주지도 않던 테슬라라는 업체가 갑자기 튀어나와 전기차 시장의 선두를 선점했다.


전동화 시대의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노동집약적인 업종이 아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훨씬 적고 그만큼 조립 인력도 덜 필요하다. 제조원가에서 배터리 비중이 늘어나는 대신 인건비 비중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대량생산체제의 버팀목이 됐던 수많은 생산직 근로자들은 고정비 부담을 덜어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거추장스런 존재로 전락할 형편이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다가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에 특화된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매정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떼쓰고 드러눕는다고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임단협 교섭 때마다 사측과 싸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는 걸 ‘승리’로 여기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노동계의 모습은 심히 우려스럽다.


심지어 정년퇴직으로 자연 감소되는 인원을 채워 넣을 것을 강요하고, 해외 시장에서의 우위 확보와 미래 산업 대응을 위한 해외 투자까지 막아서는 현대차와 기아 노조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일자리를 자신의 대(代)에서만 최대한 누리고 끝내겠다는 생각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툭하면 ‘파업’ 운운하는 행태도 한심스럽다.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회사의 생명줄과도 같은 XM3 수출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맞춰 파업을 단행하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일감 부족으로 고용 불안이 심각한 회사에서 노조가 일감을 걷어차 버리는 자해 행위에 나선 것이다.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모기업 르노가 이런 근로자들에게 전기차 생산을 맡길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노조의 존재 이유는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다. 권익을 보호하려면 일단 일자리부터 지켜내야 한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물결 속에서 노조가 할 일은 어떻게 해야 기업이 살아남고, 한 사람의 근로자라도 더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사측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50년 투쟁의 역사’는 역사 속에 묻어두고 이제는 노사 관계에서 ‘투쟁’ 대신 ‘상생’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어야 할 때다.


완성차 업계 노조가 참고할 만한 사례도 있다. 전기차 시대에 대응해 배터리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꾀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혁신(innovation)’이 들어간 사명에 걸맞게 노사 문화에서도 ‘상생’을 앞세운 혁신적 사례를 만들어냈다.


SK이노베이션 노조는 지난 2월 16일 사측과의 첫 교섭 자리에서 20분 만에 잠정합의안을 마련했고, 이후 이뤄진 찬반투표에서 90% 이상의 조합원이 찬성해 교섭을 타결했다. 이 회사 노사는 일찌감치 물가인상률에 임금 인상을 연동하는 원칙을 마련하고 5년째 지켜오고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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