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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비하·차별 발언 난무…연일 찬물 뿌리는 올림픽 중계진


입력 2021.07.29 14:02 수정 2021.07.29 16:43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메달색 차별·성차별적 단어 사용 뭇매

ⓒSBS 캡처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


지난 26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안창림이 경기 종료 7초를 남겨두고 업어치기에 성공, 올림픽 첫 메달을 목에 걸자 MBC 정병문 캐스터가 한 말이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지난 5년간 흘려 온 땀과 눈물, 그에 대한 대가 충분히 이걸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메달의 색깔을 두고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지난 25일 박성제 MBC 사장이 개막식 중계에서 부적절한 사진, 자막을 사용해 물의를 빚은 것을 사과했었다. 그는 “내부 심의규정을 한층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지만, 하루 만에 유사한 논란을 반복하며 사과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MBC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번 올림픽 중계진들의 시대착오적 발언들이 연일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유발하고 있다.


KBS 중계진은 지난 25일 열린 한국 여자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과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의 경기를 중계하며 상대 선수에 대해 “탁구장 가면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오시는 숨은 동네 고수 같다”고 표현했다. 능숙한 경기 운영에 대해 “여우처럼 경기하고 있다”고 묘사를 하기도 했다.


ⓒSBS 캡처

니시아리안은 1963년생 만 58세의 선수로, 1983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과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바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에게 ‘동네 고수’라는 표현은 비하 발언이나 다름없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우’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지난 25일 MBC 중계진은 양궁 여자단체전 결승전 경기를 중계하면서 선수들을 향해 연이어 “태극낭자”라고 칭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SBS 중계진은 “얼음공주가 웃고, 여전사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낭자는 과거 처녀를 높여 이르던 말이다. 남성 선수들에게 자주 쓰이는 ‘전사’라는 단어는 성별 중립적인 단어이기에 남녀 모두에게 적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태극낭자라는 대체어를 만들고, ‘여전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성에게는 전사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만 해도 올림픽이 끝난 이후 지적받은 사안들은 대다수 반말이나 비속어, 일부 국가에 대한 비하 등이었다. 당시 SBS에서 레슬링 해설을 맡았던 심권호 해설자가 “바보야, 방심하지 말라 했잖아” 등의 반말 중계로 주의를 받았다. 경기 진행 중 중계진이 흥분을 해 “어우 씨”라는 비속어를 사용한 것도 논란이 됐었으나, 차별적인 단어에 대한 지적은 드물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부터 관습적으로 쓰이는 차별적 단어들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스포츠 보도에서 성차별 현상이 심각하다는 연구 내용을 밝혔었다.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가 책임 연구자로 나선 ‘여성 스포츠 관련 언론보도 분석연구’에서 미녀스타, 미녀궁사, 요정 등의 성차별적 단어들이 자주 쓰인 것이 지적됐다.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 리우올림픽 때부터였다. 당시 유도 여자 48kg급 경기를 중계하던 전기영 SBS 해설위원이 베트남의 한 선수를 소개하면서 “스물여덟이면 여자 나이론 많은 나이”라는 발언을 했었다. 김정일 캐스터는 세계 랭킹 1위 몽골 우란체제크 문크바트 선수에게 “보기엔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라는 표현을 해 비난을 받았다.


이에 한 트위터리안과 이를 응원하는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리우올림픽 중계 속 성차별 발언을 모은 온라인 아카이브를 만들어 문제를 공론화시켰었다. 태극낭자, 여신 등 여성성을 강조한 단어들도 다수 리스트에 올랐다.


시청자들은 꾸준히 변화, 발전 중인데 중계진들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적이 되고 있는 차별적 발언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낡은 방식을 고수 중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박성제 MBC 사장은 개막식 중계 논란을 사과하면서 “인류 보편의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과 성평등 인식을 중요시하는 제작 규범이 체화될 수 있도록 의식 개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MBC만이 아닌, 높아진 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상파 전체에게 남겨진 숙제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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