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수사 개시, 공수처 대선 개입 논란 가중…수사 미루거나 뭉개기? 여권·여론 반발
법조계 "입증 힘들고 유죄판결 사례 드문 직권남용 혐의 붙잡은 게 실책"
윤석열 관련 일부 고발 사건들 대검 이첩…정치적 사건에서 거리두기 의구심 야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수사는 힌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수사력 부재에 정치적 파고까지 맞닥뜨린 공수처가 윤 전 총장 사건 일부를 대검 등으로 이첩하면서 정치적 사건에서 손을 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6월 4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윤 전 총장과 관련해 고발한 15건 가운데 옵티머스 펀드사기 부실수사 의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 등으로 윤 전 총장을 입건했다. 이때는 윤 전 총장이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데뷔하기 전이었다.
법조계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 개시가 늦어질수록 공수처에 돌아오는 부담은 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수사 개시를 했다간 공수처가 대선에 개입한다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반대로 공수처가 윤 전 총장 수사를 무작정 미루거나 뭉개면 여권의 강한 반발은 물론,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 관련 수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논란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입증도 힘들고 유죄판결 사례도 드문 직권남용 혐의를 붙잡은 게 실책이다"며 "특히나 대선후보를 수사선상에 올리려면 대단히 조심스럽고 혐의도 명확해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인 강신업 변호사는 "대선정국이 본격화된 현시점에서는 수사를 시작하기에 이미 늦은 감이 있다. 후폭풍을 고려하면 결국엔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윤 전 총장 측에서 '사건을 왜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느냐'고 불만을 제기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고발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수사의 필요성·상당성을 검토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며 "혐의 관련해 새로운 물증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수사가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부담감때문인지 최근 공수처는 윤 전 총장 관련 일부 고발 사건들을 대검에 넘기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손을 떼려는 듯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6일 사세행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달 28일 윤 전 총장의 '라임 술접대 사건 은폐' 의혹과 최 전 원장의 '표적감사 의혹' 고발사건을 대검에 넘겼다. 윤 전 총장 사건은 고발 5개월여 만에, 최 전 원장 사건은 고발 1개월 만에 직접수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난 6월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을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그러한 사건을 수사하더라도 정치적 고려나 판단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요청"이라고 강조했던 김진욱 공수처장의 언행과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보다.
당장 법조계에서 공수처가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자 이첩 제도를 이용해 사건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세행은 "공수처는 윤석열 관련 고발사건들과 관련해 아직까지 고발인 조사도 없이 수사를 회피하고 있다"며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되려면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유기했다는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 공수처가 최근 처한 각종 상황들을 살펴봤을 때, 윤 전 총장 수사를 고의로 뭉개려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