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적 분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와 일상 전반에 변화를 가져온다. AI(인공지능) 활용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며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녹아들고 있다.
2012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선 래퍼 투팍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했고 마이클 잭슨이 빌보드 뮤직 어워즈 2014에서 라이브 무대를 펼쳤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에는 엠넷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에서 고(故) 김현식의 얼굴과 목소리를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공개돼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향수를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인공지능 기술로 사물인식 능력과 주행성능을 갖춘 로봇 청소기나 식당에서 일을 하는 서빙 로봇을 보는 일은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최근에는 파람북 출판사가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를 출간하며 AI가 쓴 장편 소설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AI가 쓴 단편소설이 발표된 적은 있지만 장편소설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지체장애인 아마추어 수학자와 벤처사업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수학에 일가견이 있는 5명이 각자에게 주어진 수학적 수수께끼들을 풀어 나가는 이야기다.
다만 오롯이 AI 기술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소설가 김태연이 이야기의 설정, 도입, 결말 입력, 결과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김태연은 저작권이 이미 만료된 문학작품 등 단행본 약 1000권과 수많은 신문기사들을 비람풍에 학습시켰다. 출판사는 비람풍의 문장은 거의 교정을 보지 않아도 될 수준이고, 고유의 문체도 일정 수준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을 기획한 김태연은 "이제 소설 쓰기가 아닌, 소설 연출의 시대가 열렸다. AI가 소설가의 역할도 바꿀 것"이라며 "AI를 통해 문학이 더욱 풍성해지고 작품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위스콘신대학 연구팀이 1973년에 2100개 단어 길이의 미스터리 소설을 쓸 수있는 AI 시스템을 공개한 이후 인간은 AI를 활용한 문학 창작에 계속 도전해왔다. 2008년 러시아에서는 AI가 쓴 소설 '진정한 사랑'이 출판됐고 2016년에는 AI 소설 '컴퓨터가 쓰는 날'이 신이치 문학상 예심을 통과했다. 2017년에는 중국에서 AI가 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가 등장했고 2018년 미국에서는 '길 위 1번지'가 출간됐다.
창작 행위의 주체가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넘어가기 시작해, 인간보다 우월한 표현력과 정보를 지녀 문학을 다양성을 확장시킬 것이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그러나 AI가 쓴 소설이 예술과 창작 영역에 분류될 수 있는 있는가 역시 매번 따라오는 고민이다. 소설에는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과 사회 문제, 또 작가의 가치관, 고민 등이 담겨 있다. 기술 발전으로 완성도가 높아져도 AI는 이 같은 고민을 심도있게 반영하는 것이 아닌 문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주체가 아닌 생산을 하는 도구 그 이상을 지니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앞으로 AI 기술이 발점함과 동시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창작 문학에 분류될 수 있는지, 분류가 가능하다면 AI가 만든 창작물은 어디까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저작권 논의 등의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기술 발전은 AI 존재가 아닌,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해왔다.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통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은 인간의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