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8차 당대회서는
"최대주적 美, 제압·굴복시켜야"
'이중기준 철회' 요구 재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한국·일본을 사정권에 둔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최근 개발한 무기체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며 미국의 '선제적 행동'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이 미국을 '최대 주적(主敵)'으로 규정했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개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12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날 국방발전전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미국은 최근 들어 우리 국가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신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세상에 바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그들(미국)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나 그런 국가가 있다면 매우 궁금해진다"고도 했다.
이어 "미국은 아직까지도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써 지역의 긴장을 산생시키고 있다"며 "명백한 것은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의 정세 불안정은 미국이라는 근원 때문에 쉽게 해소될 수 없게 되어있다"고 밝혔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등이 '불안한 한반도 정세'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이중기준 철회 △한미연합훈련 중단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 금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언급한 바 있는 만큼, 미국 측의 '선제적 행동'이 있어야만 미국과 마주 앉을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이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고 밝힌 것은 대화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당 발언은 김 위원장이 올해 초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대외정책과 관련해 "최대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한미일 타격용 각급 무기체계를 대거 공개하며 국방력 강화 의지를 거듭 천명한 만큼, 이중기준 철회에 대한 한미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중기준 철회란 북한의 신무기 개발을 '군사도발'이 아닌 '정당한 국방력 강화'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불안정한 현정세 하에서 우리의 군사력을 그에 상응하게 부단히 키우는 것은 우리 혁명의 시대적 요구이고 우리들이 혁명과 미래 앞에 걸머진 지상의 책무"라며 "강력한 군사력 보유 노력은 평화적인 환경에서든 대결적인 상황에서든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자위적이며 의무적 권리이고 중핵적인 국책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측의 군사행동을 묵인할 경우, 국제규범을 어기고 개발한 북핵까지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북성과를 바라는 청와대와 원칙론을 견지하는 백악관 사이에 불협화음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을 이간하기 위해 남측의 팔을 연신 끌어당기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남측이 "우리의 자위적인 국방력 발전 권리까지 빼앗으려 한다"며 "심지어 우리의 상용 무기시험까지도 무력도발이라느니 위협이라느니, 긴장을 고조시키는 부적절한 행위라느니 하는 딱지들을 잔뜩 붙여놓고 미국을 위시한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목소리를 솔선 선창하는데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 발전에 불법무도한 유엔결의를 내세워 속박의 족쇄를 채워놓고 자기들은 스스로 일방적으로 설정해놓은 그 무슨 위협에 맞선다는 소위 정의로운 간판 밑에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조선의 위선적인 태도와 미국의 암묵적인 비호는 북남 쌍방 간 감정·정서를 계속 훼손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9월부터 본격화한 이중기준 논리를 최고 지도자 차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무기체계 시험을 지속해 한국과 미국의 태도를 시험하고, 사실상 대화보다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강압이 핵심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