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전술 무기 구분해 공개
'일부 폐기' 군축회담 구상하나
유엔北대사, 美 군축 노력 촉구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종전선언 등 한반도 문제 협의를 위해 미국 땅을 밟은 날, 북한은 '핵 강국'을 내세우며 지난 5년간 개발한 핵·미사일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토대로 북미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한미공조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다양한 핵·미사일 체계를 과시하며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모양새다.
12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개최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주체의 핵강국' '미사일 맹주국'을 내걸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한반도)에 조성된 불안정한 현 정세 하에서 우리의 군사력을 그에 상응하게 부단히 키우는 것은 우리 혁명의 시대적 요구이고 우리들이 혁명과 미래 앞에 걸머진 지상의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강력한 군사력 보유 노력은 평화적인 환경에서든 대결적인 상황에서든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자위적이며 의무적 권리"라며 "중핵(핵심)적인 국책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람회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등 한국·일본 공격용 '전술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미국 본토 타격용 '전략무기'가 좌우로 나뉘어 공개됐다.
북한의 다층적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한 셈이지만, 향후 북미협상 전략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공개한 전술·전략 무기체계 중 일부만 폐기하는 군비통제(핵군축) 협상을 통해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 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측이 전술·전략 무기 개발을 토대로 '전쟁억지력'을 확보해 "남북 간 공존 및 일정 수준의 군축 협상과 북미 간 제한적 핵군축 협상을 유도하려는 전략적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11일(현지시각) 군축문제를 다루는 유엔 제1위원회에서 한반도 정세 악화의 원인을 '미국의 핵 위협'으로 규정하며, 미국이 선제적으로 핵군축 노력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미국이 북한과 한반도 전체를 겨냥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핵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을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전개하고 있다"며 "미국의 적대 정책과 70년 넘게 계속된 핵 위협에 직면해 우리는 자위적 억지력이라는 힘든 길을 따라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공격받지 않는 한 어떤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핵무기를 오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핵무기의 완전한 근절을 달성하기 위해선 핵무기 최대 보유국이 먼저 진지한 핵군축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핵개발에 대해 '방어용'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한편,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문제 등을 거론하며 북미 간 핵군축 협상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