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되는 가운데 정부‧여당 개입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노조 대화 지원”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택배노조) 파업이 4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갈수록 파업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노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사측은 물론 노조가 개입을 요구하는 정부와 여당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생계를 위해 현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들이 생겨나는 등 노조 내부에서도 반발 기류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조는 지난 18일부터 롯데‧한진 등 다른 택배사에 택배 접수 중단을 요구하고, 2000여명의 조합원 상경 투쟁을 추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택배노조는 앞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오늘부터 72시간 동안 CJ대한통운에 공식 대화를 제안한다”며 지난 17일 오후 1시까지를 그 기한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사측에서 응하지 않으면서 노사 대화는 무산됐다.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에 대한 문제는 현재 국토교통부의 현장점검에서 판단할 부분이고, 협의 주체 역시 택배기사들과 계약을 맺은 택배대리점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택배비 인상분을 사측이 대부분 가져간다는 노조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택배요금이 인상되면 일정 비율로 택배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도 많아져 일방적으로 인상분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회사는 택배업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업계 전체의 합의 이행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선도적으로 노력하겠다”며 “대리점연합회와 노조가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개입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노사 간 문제라며 정부 개입이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여당에서도 파업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노동위원회가 노조 단식농성장을 방문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설 연휴를 앞두고 지난 17일부터 내달 12일까지 4주간을 택배특별관리기간으로 지정하면서 약 1만명의 추가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는 점도 노조로서는 악재가 될 수 있다.
택배특별관리는 연례적으로 시행하는 것이지만, 파업 참여 노조원이 많지 않은 만큼 추가 인력 투입으로 배송 차질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경우 파업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CJ대한통운 노조원은 1600여명 수준이다.
총파업 초반 40만개의 택배가 배송에 차질을 빚었다가 현재는 20만개로 줄어든 상태다. 생활고 문제로 현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들이 생겨나면서 현장 혼란도 초반에 비해서는 개선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다만 파업이 설 연휴까지 이어질 경우 배송 차질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보통 설, 추석 명절에는 평시 대비 택배 물량이 50% 이상 증가한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택배기사는 배송한 물량에 따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 될 경우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설 물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이번 주와 다음 주가 사태 해결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사측은 물론 정부와 여당에서도 별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파업에 대한 여론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며 “노조에서도 파업을 끝내기 위한 명분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파업을 밀고 나가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택배를 이용하는 소상공인 등 경제계는 물론 일반 여론까지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파업 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택배노조는 연말연시 성수기의 택배 물량을 담보로 자신들의 요구사항만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더 이상 ‘위력과 투쟁을 통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구시대적 노동운동 발상에서 비롯된 파업에 공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또 “이번 파업은 방역 강화로 인해 온라인에 의한 생필품 수급 의존도가 높아진 국민들의 생활에 극심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온라인 판매로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생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지난 5일 성명서를 통해 “많은 소상공인들이 지역 특산품이나 농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비롯해 자신의 상품을 택배로 배송하는데, 택배 지연 지역이 늘어나면서 기업들과 농어민의 손해가 극심하며 가뜩이나 힘든 소상공인들은 고객 이탈과 대금 수급 차질로 영업이 위협받는 현실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CJ대한통운 택배 노조는 소상공인을 볼모로 하는 명분 없는 파업을 즉각 철회하고 정상 업무 복귀에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