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정부의 거짓과 국민의 슬픔


입력 2022.01.29 07:50 수정 2022.01.28 10:53        데스크 (desk@dailian.co.kr)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가족들이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사건 진상 규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문 대통령의 편지를 반납하려 했지만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지 못했다.ⓒ 채널A 화면캡처

많은 사람들은 거짓은 오래 가지 못하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재작년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피격으로 숨진 해수부 공무원의 아들이 지난 18일 소위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청와대에 반납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뒤 1년 4개월 동안 희망이었고 빛이었던 대통령의 친서를 길바닥에 버렸다. 그는 “대통령께서 피살 당시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아, 유족들은 친서를 길바닥에 놓고 울면서 돌아섰다. 대통령, 청와대, 민주당, 국방부, 해경 모두 등 돌리고 온 천지에서 매서운 북풍만이 그들과 함께 했다. “대통령의 거짓말 편지”도 길바닥에서 바람에 떨었다.


지난 27일 그 젊은이는 야당 대선 후보에게 다시 호소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날의 진실”이라며 “아버지의 명예를 찾고 제자리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청년의 아버지, 해수부 공무원은 2020년 9월 21일 점심 무렵에 서해상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돼, 22일 밤 10시 쯤 북한군에게 피격되고 해상에서 소각됐다. 군(軍)은 감청과 관측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고 절차에 따라 보고했다. 관계 장관들은 23일 새벽 1시부터 청와대에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다. 대통령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23일 오전 8시 30분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았다.


그러자 “실종에서 소각까지 시간이 있는데, 그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뭘 했느냐?” “북한과 핫라인도 있고 군통신선도 있다면서, 왜 통화도 안했느냐?” “그날 밤 청와대 회의에 대통령은 왜 참석하지 않았느냐?”며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한 일이 없으니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비등한 여론에 놀란 청와대가 10월 8일자로 마음에도 없는 친서를 보냈다. 그러면서 정부는 숨진 공무원의 ‘자진 월북설’을 흘린다.


“아버지의 월북을 납득할 수 없다”는 유족은 ‘그날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편지, 청와대 국방부 해경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인권위원회 제소, 유엔(UN) 인권보고관에게 편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 해경 상대 손해배상소송, 정부 상대 정보공개소송, 해경 상대 명예훼손 고소, 청와대 앞 1인 시위 그리고 대통령 친서 반납 등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봤다. 지난 1년 4개월간의 일이다.


그 사이 문 대통령의 친서가 왔고, 유족은 법원에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작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피살사건이 발생할 당시 청와대가 국방부와 해수부에서 받은 보고내용과 청와대가 관련 부처에 지시한 내용 등을 공개하고, 해경은 어업지도선 근무 공무원들의 진술조서와 초동 수사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해경은 정보를 공개하기는커녕, 2심 법원에 모두 항소하고,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이라고 봉해 버렸다.


40년 전의 일이다. 1982년 4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궁지에 몰리자 영국과 영토분쟁인 포클랜드제도를 침공했다. 영국이 대응에 나섰고, 끝내 승리한 이 전쟁에서 많은 영국군이 죽거나 다쳤다.


이 전쟁의 최고지휘관 대처 수상은 전사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손 편지를 썼다. 대처는 후일 회고록에서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젊은 부인과 부모들에게 한 장씩 편지를 쓰느라 며칠 밤을 울었다”고 했다. 진정이 담긴 소통이다.


그해 봄 두 달간의 전쟁에서 영국은 255명의 군인을 잃었고, 775명의 사지가 찢겨졌지만, 1만2173㎢의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 그 섬은 영국 본토에서 1만3000km 떨어져 있다.


제2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20년 전이다.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교전이 있었다. 3년 전의 1차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북한 해군이 기습공격을 가해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이 전쟁의 전사자, 부상자는 당시 정권 아래에서 잊혀졌다. 가족들이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국가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에서 지웠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3년 11월 9일, 지구 저편 미국 동부 메사추세츠주 우스터시내 워싱턴 스퀘어. 우스터재향군인회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이 지역 출신 191명의 참전군인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을 제막하고, 기부자 명단에 서해교전 전사자 6명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서해교전 유족 중 한명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기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전사자 6명의 이름을 새겼다.


우리 정부의 외면과는 대조적으로 리언 러포트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족에게 위로편지를 보냈다. “당신 남편과 아들의 영웅적인 노력과 용기를 결코 잊지 않겠다. 민주주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그 유족은 조국을 위해 전사한 군인들을 서럽게 대우하는 대한민국에 실망하고 2005년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우리 아저씨(고 한상국 상사)와 전우들의 이름을 거기 남기고” 그 정권이 끝나자 2008년 다시 돌아왔다.


이 유족은 이제 50살을 바라보지만, 벽돌에 새겨진 한상국 상사는 여전히 27살 앳된 나이다. 그는 “내 남편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조국을 위해서 한 일을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진실의 힘은 강하고 오래 간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