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10~19일 시범개방, 1일5회 500명씩 관람객 받을 예정
곳곳에 드러나는 '역사'의 흔적…우리와 다른 구조물 눈길
'발암물질 논란'에 "문제 안돼"…고오염 부지 동선서 제외
오랜 세월 동안 닫혀있던 용산 미군 기지가 차츰 문을 열고 있다. 옛 용산 미군기지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품은 땅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906년 300만평을 강제로 수용해 대규모 병영 기지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물려받아 사용했다. 그렇게 100년이 넘도록 우리 국민들의 발길이 닿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 됐다.
그런 용산 기지가 지난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 기지의 평택 이전에 합의 이후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7일 용산미군기지 중 장교숙소 5단지에 이어 추가로 민간에 공개되는 장군숙소, 스포츠필드 등을 찾았다. 이들 부지는 오는 10일부터 19일까지 10일 동안 시범 개방된다. 1일 5회로 나눠 1회에 500명씩 2시간 간격으로 관람객을 받을 계획이다.
시범 개방 부지는 신용산역에서 시작해 장군 숙소와 대통령실 남측 구역을 지나 스포츠필드(국립중앙박물관 북측)에 이르는 직선거리 약 1.1㎞의 공간이다.
동선의 시작점은 신용산역 방향으로 나 있는 14번 게이트다. 해당 출입문 인근에는 군 병원이 있어 미군 사이에선 '호스피털 게이트(Hospital gate)'로 통했다고 한다.
출입문 옆으로는 빨간 지붕의 단층짜리 건물인 장군 숙소가 줄지어 서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1959년도 경 지은 것으로, 앞서 공개된 미군장교 숙소 부지의 주택들보다 30여년 먼저 조성됐다.
그렇다 보니 사진이나 영상 자료에선 봤던 옛날의 미국 소도시를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오래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무로 된 전봇대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나무는 새까맣게 때가 든 모습이었다.
길가에 있는 소화전도 생소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색상은 국내와 동일한 빨간색이었으나, 미국 소방관 안전모 모양으로 국내의 것과는 다소 달랐다. 사용된 너트도 우리와는 다른 것이 사용됐다. 건물들 지붕에는 굴뚝이 불뚝 솟아올라 있어, 벽난로를 사용하는 미국과의 생활문화 차이도 엿보였다.
건물 내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어 실내를 둘러볼 순 없었지만, 오는 9월 정식개방 땐 일부 동을 리모델링해 휴게실이나 안내소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120여년 간 대한민국 국민의 발길이 끊겼던 곳이었지만, 선조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잔디밭에는 울타리 안에 화강암으로 된 조각상들이 서있었는데, 해설자에 따르면 과거 미군들이 인근에 있던 조각상들을 주워와 전시해 둔 것이라고 한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곳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용산기지는 둔지산 구릉지대로 둔지미라는 마을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주둔을 시작하면서, 우리 품을 떠나게 됐다.
숙소 부지를 벗어나 미10군단 도로를 따라 걸으니 스포츠필드가 나왔다. 과거 야구장으로 사용됐던 곳에서는 작지만 대통령 집무실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이제 전망대로 활용되는 관객석으로 올라보니 용산기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바로 옆에는 우리 근현대사와도 무관치 않은 농구장이 위치해 있다. 과거 농구장 조차 변변치 않았던 시기 1967년 제 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여자농구대표팀이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실력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 걷다 보니 투어의 끝이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이는 널따란 부지가 펼쳐졌는데, 용산공원 조성단은 향후 이곳을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근방이 미군기지이다 보니 보안상 촬영이 제한되는 곳이 많았다.
용산공원을 걷다 보니 '경청'이라고 적힌 빨간 우체통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는데, 용산공원 조성과 관련해 대국민 의견을 접수하는 곳이라고 했다. 향후 관람객들이 의견을 작성한 뒤 우체통에 넣게 되면 이를 취합해 용산공원 조성에 활용한다.
기준치 '29배' 검출된 오염물질…"인체 유해 가능성 낮아"
한편, 용산공원 부지가 독성물질에 오염돼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토부는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했다. 체류시간을 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고오염된 곳은 동선에서 제외해 인체에 유해한 수준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복환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장은 "걱정을 안해도 된다"며 "개방 범위 및 시간들을 적정하게 계획해 오염된 부분 접촉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2시간이 초과되면 인체에 유해하냐는 질문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며 "세간의 우려도 있겠지만, (관람시간 2시간 제한은) 오히려 관람객들의 혼잡도와 편의시설 이용 등을 고려해 책정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공개되는 부지 중 일부인 '장군숙소 부지'에 대해 토양 오염을 조사한 결과 '석유계 총탄화수소' 수치가 기준치의 29배를 넘은 것으로 알려진다. 벤조피렌 등 11개 발암물질도 기준치를 초과했다. 야구장에선 1급 발암 물질인 비소가 기준치의 9배 이상, 그 밖의 지역에서도 크실렌과 납, 아연, 구리 같은 오염 물질이 상당수 검출되기도 했다.
다만 일종의 간이 방식인 유해성 저감조치가 아닌 환경오염 정화작업은 용산기지가 완전 반환된 뒤 진행될 전망이다.
김복환 단장은 "유해성 저감조치가 시행 중"이라며 "다만 정화작업은 용산기지가 완전 반환된 뒤 진행할 예정이다. 완전 반환을 기점으로 3년 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