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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사이즈의 유혹, '나비약'에 빠진 아이들 [정채영의 영한시선]


입력 2022.06.23 07:02 수정 2022.06.23 05:53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마르고 싶어서…처방 없이는 구매할 수 없는 '나비약'까지 구매

환청·환각으로 공격성도 보여…마약사범 될 우려도

심각하게 마른 연예인·인플루언서 잦은 미디어 노출…평범한 사람도 이상하게 보이게 만들어

구매 단속과 더불어 '내면의 힘' 기를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식욕억제제 '나비약' ⓒ뉴시스

10대들이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다.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없는 식욕억제제를 불법으로 구매할 만큼 외모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지난 2019년 길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며 차도에 뛰어든 한 배우는 "몸에서 콩알탄이 터지는 것처럼 찌릿찌릿하고 사지가 뒤틀렸다. 그러면서 갑자기 '싸워라'라는 환청이 들렸다"고 말했다. '나비약'을 먹은 후였다.


최근 SNS를 통한 향정신성의약품 불법 판매자와 구매자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로 지정된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일명 나비약)'을 타인의 명의로 처방받아 SNS를 통해 5배나 되는 금액으로 되팔았다. '나비약'은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가 불가능하고 오남용 할 경우 부작용이 뒤따른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중 대부분이 10대였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교복이 맞지 않아' 식욕억제제를 구매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비약은 비만도가 높지 않은 환자에게는 처방이 불가능하다. 즉, 약을 불법 구매하는 청소년은 약을 쓸 정도의 몸이 아님에도 살을 빼기 위해 약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청소년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지나치게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회도 한 몫하고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이돌이나 인플루언서 대부분은 '44사이즈'의 옷도 남을 것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살이 붙으면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댓글에 몸살을 앓는다. 이런 환경에서 평범한 자신이 이상해 보이는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찰나의 선택으로 심각한 부작용과 '마약사범'이라는 낙인과 마주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조증이 생길 수도 있고, 뇌의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어떤 나쁜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작게는 환각과 환청 불면증부터 크게는 공격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회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구나 살을 빼기 위해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약물의 위험성은 더 크고 예측할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을 위한 일인 만큼 불법 의약품 구매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생을 장기적으로 볼 때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아이들이 약을 사도록 내몬 것은 사회가 아닐까.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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