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만 채우는 ‘반쪽짜리 정책’…고급인력 확보해야
인력난 근본적 원인 ‘열악한 근무환경’ 대응 방안은 없어
외국 인력 대거 투입으로 조선업계 임금 상승 여력 저하도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으로 외국 인력을 대거 유입하겠다고 나섰으나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업계 특성상 고급인력인 숙련공이 필요하지만, 미숙련공이 대부분인 외국인 근로자로 머릿수를 채워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조선업 등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 쿼터(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정활동(E-7) 도입을 위해 용접공 및 도장공에 대한 외국인력 쿼터제를 폐지해 3000명의 인력을 추가 확보하겠단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장과 괴리된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업계 인력난의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근무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 역시 이에 공감했지만, 이와 관련된 해결방안은 이번 정책에서 빠져있었다.
조선업계 인력난은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조선업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발생했다. 당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업계를 떠난 조선업계 숙련공들은 노동 강도 대비 낮은 임금으로 지금껏 돌아오질 않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인력은 2014년 기준 20만3441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9만2687명으로 54%나 급감했다.
현장의 한 근로자는 “요즘 업황이 다시 나아졌다하지만 여전히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다른 업계에 비해 인력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며 “근무지도 그렇고 임금도 낮다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선호 업종으로 찍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늘어난 인력과 함께 업무효율 제고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보통 단순작업에 투입된단 점에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외국 인력도 어느 정도 기술력을 갖추게 한 다음 현장에 투입시키긴 하나 기술력을 많이 요하는 작업은 거의 국내 인력이 맡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조선 산업 경쟁력마저 흔들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간 조선 산업에서 기술경쟁력의 원천은 숙련된 고급인력이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6년 10월호 월간 노동리뷰에 게재한 ‘조선산업 숙련형성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조선업계 엔지니어 및 배관, 취부, 용접기능의 숙련수준은 조선 및 해양플랜트의 품질과 생산성에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다. 이는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경쟁우위에 그 어떤 것보다도 설계 및 기능의 숙련수준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저시급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저임금 구조가 계속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들 또한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기존의 저임금 구조를 더 심화시킬 소지가 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금이 낮은 외국인 근로자들로 인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여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기존 인력들의 임금이 낮아지지 않더라도 상승 폭이 제한 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로 외국 인력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인력난이 가중된 것으로 보며, 기존 문제점에 대해선 차근차근 해결하겠단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선업, 뿌리산업 등 상시적인 구인난의 본질적 원인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노동시장 이중 구조 등에 기인하므로, 원·하청 하도급 구조개선 등 이중구조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 및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등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력도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