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판정부, 주가조작 론스타도 절반 책임 인정
다수 의견 “한국 금융당국, 정치적 부담 피하고자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 노력”
소수의견 “론스타 100% 책임져야 한다”
법무부, 중재판정부 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검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간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에서 한국 정부의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론스타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평가했다.
법무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ISDS 사건 판정 요지서를 공개했다.
판정요지서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투자보장협정상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면서도, 주가조작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론스타에게도 50%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판결 확정을 받았던 점에 비춰 보면 소위 ‘먹튀’(Eat and Run)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011년 주가조작 사건의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유죄판결에 따른 금융위원회의 외환은행 주식매각 명령으로 론스타 측은 2012년 5월 18일 이후 외환은행의 대주주 지분을 더는 보유할 수 없게 됐다”며 “이는 금융당국이 매각 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덧붙였다.
론스타의 주가 조작 유죄 판결과 금융당국의 위법행위가 하나은행 매각 가격 인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양측이 손해를 동등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중재판정부의 판정이다.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가 요구했던 약 6조2590억의 손해배상 중 약 289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당시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제기했던 여러 주장 중 2011~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할 당시 금융위가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승인을 늦추며 론스타를 불공정 대우했다는 것만 인정했다.
한국 정부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다수의견(2명)은 “금융당국은 매각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Wait and See’(관망) 정책을 취했고, 이런 행위는 정당한 정책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의 관망 정책이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그 근거로 한국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금융위원장에게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가격 인하 후에는 이를 축하한 점, 하나금융 관계자가 ‘가격을 인하하면 금융위의 정치적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고 론스타 측에 언급한 점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다수 의견은 “사인 간 계약 조건에 관여하는 건 금융당국의 권한 내 행위가 아닌데도, 금융당국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했다”며 “이는 금융당국의 규제 권한을 자의적이고 악의로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소수의견(1명)은 “(한국 정부의) 가격 인하 압력 행위를 금융당국에 귀속시킬 수 있는 직접 증거는 없고, 전문과 추측만으로는 국가책임 귀속을 인정할 수 없다”며 주가조작을 한 론스타 측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특히 소수의견은 론스타가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제출한 기사의 경우 그 증명력에 제한적이라면서 금융위 증인 및 내부 문건에서 금융위가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나금융 관계자가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 절차뿐만 아니라 이번 ISDS 절차에서 일관적으로 ‘금융위가 막대한 정치적 압력 아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매각 가격 인하를 요구한 적은 없다. 하나은행 측은 매각가격이 인하되면 금융위가 이를 반길 것으로 추측했을 뿐’이라고 증언한 점도 근거가 됐다.
소수의견은 가격 인하 압력이 있었고, 그 책임을 금융당국에 묻는다고 하더라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도 냈다.
한편 법무부는 중재판정부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중재 당사자는 중재판정부의 월권, 중재판정의 이유 누락,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등 5가지 사유를 근거로 중재판정 후 120일 이내에 ICSID 사무총장에게 단 한 번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