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위·국방위 소관 부처 예산안 상정
이태원 참사로 절제된 분위기 속 진행
정쟁 중단에 예산국회 파열음도 감소
현안 입장 차 커…언제든 터질 활화산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소관 예산안 상정을 시작으로 여야가 예산안 심의에 착수했다. 상임위별 예비 심사와 동시에 오는 11월 7일부터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가 시작된다. 이태원 참사로 초당적 협력 필요성이 제기된 상태에서 국회 심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당초 이번 예산안 심사는 초유의 '준예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난항이 예상됐다. 예산안의 내용과 감세 정책뿐만 아니라 검찰의 대장동 수사 등에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정쟁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여야 정쟁으로 인한 예산안 심의의결 지연을 막기 위해 본회의 '자동부의' 규정이 있으나 야당이 절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여야 모두 "수습과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휴전에 들어간 상태다. 나아가 필요할 경우 초당적 기구를 만들자는 데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감사드린다"며 "필요한 협력이 있다면 요청하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고려한 듯 이날 외통위와 국방위 전체회의는 무겁고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회의 시작 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외국인 희생자 예우 필요성에 대해 여야에서 한목소리가 나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우리) 국민에 준해서 가능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안에 대한 여야 간 입장 차가 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살얼음판 상태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일례로 외통위 질의에 나선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내달 6일 일본에서 열리는 관함식에 우리 군이 참석하는 것에 대해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고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절한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 장관은 "과거 전례 및 국제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며 "북한이 도발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의 엄중한 안보상황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비속어 논란'이 다시 거론되며 날 선 대치 상황도 연출됐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이 XX 발언까지 하고 국회에 통과를 시켜달라고 해야 할 텐데 국회를 모독했으면 최소한 사과라도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공세를 펼쳤고, 박 장관은 "사적인, 혼잣말 같은 발언에 대해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응수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의 휴전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참사 수습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으로 몸을 낮추고 있지만, 여야 간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현안이 겹겹이 얽혀 있어서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대장동 특검법 하나만 해도 협의조차 안 되는데, 감사원법·양곡관리법, 세법 등 어느 하나 합의가 어려운 문제가 산적하다"고 했다.
한편 국회는 오는 11월 7~8일 종합정책질의를 시작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본격 가동한다. 이어 10~11일에는 경제부처, 14~15일 비경제부처 부별심사가 각각 진행된다. 이후 17일부터는 예산소위 활동이 시작된다. 소위에서 예산안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 30일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