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더탐사와 협업…유족 동의 없이 명단 공개
국민의힘 "분명한 2차 가해"… 민주당 책임론 제기
정의당도 "참담하다" 비판…정작 이재명은 침묵
당 차원에서만 "동의 얻지 않은 공개는 부적절" 입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쏘아 올리고, 친(親) 민주당 성향 매체가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과 관련해 파문이 일고 있다. 명단 공개는 이 대표 등 민주당 일각을 제외하면 여당은 물론 야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상당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어 온 사안이다. 그런데 해당 매체가 유가족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명단을 공개하면서 '민주당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인터넷 매체 '민들레'는 이날 자사 홈페이지에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으로 사망자 155명(이달 초 기준) 전체 명단이 적힌 포스터를 게재했다. 명단은 가나다순으로, 외국인 희생자 이름은 영문으로 표기했으며, 이름 외의 다른 정보는 표기되지 않았다.
민들레는 명단 공개 배경에 대해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왔으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면서 "명백한 인재이자 행정 참사인데도 사고 직후부터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며 책임을 논하는 자체를 금기시했던 정부 및 집권여당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언론 더탐사와의 협업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공개한다"며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개한 명단은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며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민들레'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칼럼진으로 참여해 최근 출범한 매체다. '더탐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로, 두 매체 모두 친민주당 성향 매체로 분류된다.
명단 공개는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해 온 사안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는가.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되겠나"라며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패륜적 정치기획"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민주당과 함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정의당,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정치권이 아닌 유족이 결정할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이 대표의 제안을 두고 "미친 생각"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민주당 성향 매체가 희생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광주 민주화 유공자 명단도 공개 안 하고 있다"며 "유족 대부분이 공개를 원치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공개했는지, 여러가지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분명한 2차 가해"라며 "2차 가해도 언론의 자유라고 보장해줘야 하는가. 이건 자유의 영역이 아닌 폭력이고 유족의 권리마저 빼앗은 무도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어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라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를 설계했던 것은 민주당"이라며 "지금은 온라인 매체 뒤에 숨어 방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도 공범"이라고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참담하다"며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몇 차례 말한 바 있다. 과연 공공을 위한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은 어디까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이재명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일부와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지만, 이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유가족 비공개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표는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신의 SNS에도 명단 공개와 관련한 메시지를 일체 내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자신의 명단 공개 제안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때 빠르게 반박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다만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동의를 얻지 않은 공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제대로 추모되려면 당사자의 동의 얻어 사진과 위패 모인 상태에서 추모가 돼야 하는데 오늘 희생자 유가족들의 동의 얻지 않은 상태에서 (명단이) 공개된 건 바람직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