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지주 사외이사 80% 임기 만료
금융당국 압박 속 관례대로 재선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시선이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에서 금융그룹 이사회로 향했다.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가운데 80%가 넘는 인원이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 당초 사외이사들의 무난한 재선임이 예상됐으나, 금융당국의 압박이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감원장은 전날 서울 중구 소재 은행회관에서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표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원장은 사외이사가 특정 직군이나 그룹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고, 임기도 과도하게 겹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지주 회장 교체기라는 미묘한 시기에 금감원장이 ‘킹메이커’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업계는 당국과 대립을 자처하는 지주사는 없을 것이라며 정권 코드에 맞춘 낙하산 인사를 예고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의 깜짝 발언에 4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 그룹 이사회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상반기 기준 4대 금융 사외이사는 총 34명이며, 이 중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끝나는 인원은 28명으로 약 82% 수준이다. 연임 초과 기한에 걸려 교체가 예상되는 인원은 4명이다.
각 사별로 KB금융은 전체 7명 사외이사 중 6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들 중 2018년 3월 선임된 선우석호, 정구환, 최명희 이사는 5년 임기를 채워 교체될 예정이다. KB금융 사외이사는 5년 초과 연임이 불가능하다.
신한금융은 12명 중 올해 새로 선임된 김조설 이사를 제외한 11명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6년 초과 연임 기준에는 박안순 이사가 해당된다. 특히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임기도 내년 3월 종료되는 만큼, 사외이사 재연임 여부가 미치는 여향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은 8명 모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사외이사 임기는 최대 6년으로 8명 모두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 물론 올해 3월 취임한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외이사 구성에 변화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금융에서는 총 7명 중 노성태, 박상용, 정찬형, 장동우 등 4명의 이사가 임기를 마친다. 다만 이들 모두 임기 제한(6년)을 다 채우지 못했고, 과점주주 추천 인사임을 고려하면 대부분 유임이 예상된다.
다만 우리금융은 과점주주가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고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지난해 완전민영화에 성공한 우리금융이 과점주주 추천이 아닌 사외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된 송수영 변호사는 과점 추천이 아닌 첫 사례였다.
예년대로라면 연임 초과 기한에 걸리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외이사가 무난히 재선임에 성공해왔다. 그러나 올해 정권 교체로 사외이사들도 친정부 인사로 물갈이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 원장의 발언 또한 심상치 않다. 과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친문(親文)으로 분류되는 박병대 신한금융 사외이사와 선우석호 KB금융 사외이사가 신규 선임 된 바 있다.
당장 우리금융 이사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손 회장의 중징계 확정 이후 이 원장은 행정소송을 하지말아란 의미를 담은 경고성 메시지를 내보냈다. 손 회장이 행정소송을 하지 않으면 중징계가 확정, 연임은 물거품이 된다. 차기 회장 후보는 사외이사 7인으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확정짓는데 이사진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점주주라 독립성이 보장됐다 하더라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관치 금융’ ‘외풍’ 우려에는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지속 제기되는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은 물갈이의 명분을 더해주고 있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독단을 감시 및 견제하기 위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기구지만, 고연봉을 받으면서도 본연의 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회장추천위원회 소속도 겸하면서 기존 지배구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4대 금융 이사회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결의한 안건 1155건 중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0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