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선 방안에도 규제시장 부진 지속 부담
규제 덜한 자발적시장에 올해 8개사 뛰어들어
업계 첫 진출 하나증권 94만톤 크레디트 획득
정부가 탄소배출권 거래제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증권사들이 추진하는 관련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아직 규제 시장의 거래가 부진하다는 점은 부담스러운 요인으로 자율적인 구조의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1일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 2곳을 배출권 시장 시장조성자(LP)로 추가 지정했다.
기존 LP인 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하나증권·한국투자증권·SK증권 5곳에 더해 총 7곳으로 늘어나게 됐고 이들 7개사는 내년 1월 2일부터 1년간 시장조성자로 활동한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탄소감축 의무가 있는 규제 대상 기업이 배출권을 사고파는 규제적 시장(CCM)이 대표적이다.
또 감축 대상에 속하지 않은 기업과 기관·비영리조직(NGO) 등이 자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수행해 얻은 탄소 인증서(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자발적 시장(VCM)이 있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15년 개설된 한국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K-ETS)가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규제적 시장이다.
정부가 사전에 정한 할당배출권 이외에는 공급이 제한돼 탄소배출권 가격이 널뛴다는 문제가 지속됐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20개 증권사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어 정부는 이달 시장조성자도 7곳으로 늘리면서 증권사의 배출권 보유 한도를 기존 20만톤에서 50만톤으로 상향했다.
기업의 거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배출권 위탁 거래도 도입하기로 했다. 가격 변동 위험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배출권 선물 상품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시장조성자 확대 및 위탁 거래, 배출권 선물거래 도입 등 이번 개선 방안으로 국내 탄소배출권에 대한 유동성 확대와 시장 왜곡이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내 배출권 거래량은 지난해 5472만톤으로 2015년(566만톤)보다는 10배가량 늘었으나 예상보다 저조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장기적인 기대감은 있지만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시장에선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기존 시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발적 배출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자발적 시장은 전 세계 과제인 오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선 필수적인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판단이다.
올해 들어 규제 시장에서 시장조성자 역할만 해온 하나증권(3월)과 한국투자증권(4월), SK증권(7월)을 비롯해 KB증권·NH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8월)이 자발적 배출권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삼성증권도 지난 1일부터 관련 업무를 개시한다고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국내 업계 최초로 자발적 시장에 진출한 하나증권의 경우 지난 4월 방글라데시에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을 이용한 정수시설을 보급해 약 94만톤의 탄소 크레디트를 확보했다.
최근 해외 금융사들은 펀드를 통해 탄소 프로그램 및 기술 기업에 투자하거나 크레디트 거래 플랫폼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 탄소 크레디트에 대한 통합된 기준이 없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지침 수립이 진행 중에 있다.
하온누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발적 탄소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있는 초기 단계의 시장으로 탄소 프로젝트와 크레디트에 대한 투자가 매력적일 수 있다”며 “그러나 크레디트 품질 리스크 해결을 위한 방법과 법률적 성격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