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미용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얼굴을 찌푸릴 때 미간 사이에 생기는 삼각형 주름을 뜻한다. 삶의 고뇌가 깊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풍파에 찌들게 되면 미간의 주름, 슬픔의 삼각형이 생기게 된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 최근 개봉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영화는 무대만 패션쇼, 크루즈, 무인도로 설정됐을 뿐 결국 계급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협찬으로 초호화 크루즈에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딕킨슨 분)과 야야(찰비 딘 크릭 분)는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긴다. 그러던 중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간신히 8명만이 무인도에 도착한다. 하지만 부자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때 크루즈에서 청소를 담당하던 필리핀 여성 승조원이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울 줄 알면서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남녀 주인공의 직업을 모델로 삼은 배경은 고전적인 남녀의 역할을 떠나 남녀 사이에도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여성의 경우 남자 모델보다 수익이 3배가 넘는다. 반면에 남성 모델은 수입도 적을 뿐만 아니라 성희롱에 노출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당하는 부당한 일이 패션계에서는 다르게 흘러간다. 영화는 돈과 아름다움이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조명한다.
자본주의의 천박함도 말한다.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모여있는 초호화 유람선에서 부자들은 돈으로 갑질을 하며 누가 더 돈이 많은지 자랑하듯 뽐낸다. 아내와 정부가 함께 휴가 온 러시아 비료 갑부, 수류탄 제조업에 종사하는 비도덕적 부부, 남편과 함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행 온 돈 많은 중년여성, 이들은 모두 실소가 터질 만큼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늘어놓는다. 흔들리는 크루즈 안에서의 고급 음식은 배가 흔들리면서 나온 이들의 토사물과 배설물만큼이나 역겹게 보인다.
계급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슬픔의 삼각형’은 영화 ‘기생충’의 크루즈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기생충’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계급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의 삼각형’은 계층문제를 좀 더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크루즈에서는 화장실 청소부였던 필리핀 승조원 애비게일은 무인도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불을 지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가 되면서 권력을 장악한다. 영화는 인간이 모인 자리면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계급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을 극도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뜨려 놓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면서 관객들에게 과연 계급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은 남자 모델로 활동하는 주인공 칼이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들로부터 미간의 주름을 펴라는 말을 듣는 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제목에는 칼의 삶의 피곤함과 힘듦이 녹아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삼각형은 위치가 바뀌어도 원형을 유지하듯이 젠더, 자본주의, 인종 등을 뒤집어도 피라미드 계급구조는 놀랍도록 원형을 유지한다. 동양인, 흑인, 백인의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 계급 착취와 폭력은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이념과 체제에 상관없이 어느 사회나 차별과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지적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인간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계층구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문제로 갈등과 분노가 급증하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