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이순신 동상 앞에서 "야당이
할 수 없이 다시 길거리에 나섰다"
후쿠시마 서명운동 발대식 열었지만
광장 한켠은 '선동되지 않은 일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외로 나섰다.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및 수산물 수입 반대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겠다고 했다. 장소는 하필 '이순신장군 동상앞'이었다.
26일 오전 11시 30분 광화문역 9번 출구, 과거 '괴담 선동' 때마다 광장을 뒤덮었던 군중들의 뜨거운 열기는 없었다. 출구를 나와 한 바퀴 둘러보고나서야 발대식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150여 명의 군중이 광장 한켠에 몰려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휴대전화에 셀카봉을 장착한 유튜버들이 자리싸움 신경전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아직 야외가 아주 무덥지는 않은 5월말, 점심시간을 앞두고 평범한 보통 시민들은 광장의 다른쪽 한켠에서 진행되는 '2023 서울거리공연 구석구석라이브'를 듣고 있었다.
가수가 열창하고 시민들이 호응하는, 선동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정경이 불만스러웠던 것일까. 발대식에 모인 군중들 사이에서 "일부러 방해하느라고 노래하고 있나봐" "노래도 딱 일본 스타일이네"라는 말이 오갔다.
'2023 서울거리공연 구석구석라이브'는 계속 진행되던 이벤트였으며 '오늘의 공연 일정표'까지 비치돼 있지만, 발대식에 모인 군중들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의 진실만큼이나 광장의 라이브 공연의 진실에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제 곧 행사 시작하니까, 피켓을 가진 당직자 분들은 이쪽으로 좀…"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던 오전 11시 35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현장에 도착했다. 4050대 아주머니들을 중심으로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연호가 터져나왔다.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정청래·박찬대·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 조정식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늘어선 가운데, 얼마전 넷플릭스 25억 달러(3조3000억 원) 투자 뉴스를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다는 것인지, 미국이 우리에게 투자를 한다는 것인지 헷갈려 물의를 빚었던 양이원영 의원이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발언에서 "야당이 할 수 없이 다시 길거리 서명에 나서게 됐다"며 "후쿠시마 원전 핵물질 오염수는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에 100배로 섞어서 바다에 갖다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장하게 포문을 열었다.
이어 "왜 시찰단을 보내 유람관광을 하게 하고 안전성 검증을 포기하느냐"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시찰단으로 해양투기를 인정하기 되면, 결국은 위험성이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피해를 입는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 일본 편을 들어서 위험한 핵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동의를 해주고, 들러리를 서주는 것이냐"며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맞느냐"고 성토했다.
10㎞ 밖서 원전 바라본 방일단이 정부
시찰단 겨냥 "구경만 하고 온 유람단"
광우병·사드 괴담이 백신 됐던 것일까
시민들 '구석구석라이브' 들으며 평온
뒤이어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저지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위성곤 의원이 나섰다.
위성곤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이 오늘 귀국한다"며 "시료 채취도 없고, 명단도 없고, 언론 검증도 없는 깜깜이 시찰단이 일본에 가서 가져온게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시찰단은 그저 유람단이었다. 구경만 하고 온 것에 불과했다"며 "이용만 당한, 아니가지만 못한 시찰단이고 유람단"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자로부터 "얼마전 일본을 직접 방문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저지를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소개받아 등장한 위성곤 의원은 실제로 양이원영 의원과 지난달 6일부터 8일까지 1박 3일의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당시 이들은 도쿄전력 본사가 어딘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그나마 찾아간 도쿄전력으로부터도 방문을 거부당했다. 별 수 없이 사옥앞 골목에서 회견을 하고, 회견을 지켜보던 일개 직원에게 서한을 전달했다. 정부 시찰단은 원전 내부로 들어가 설비를 둘러봤지만, 민주당 방일단 의원들은 원전서 10㎞ 떨어진 방파제 인근에서 원전을 멀찍이 바라보는데 그쳤다.
주민을 면담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아, 원래부터 반대 활동을 하던 활동가 정도를 만났다. 현지에서 찾은 진료소는 '극좌 폭력집단'으로 지정돼 일본공산당도 선을 긋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전국위원회(중핵파)'와 유관한 곳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런 방일단이 정부 시찰단을 겨냥해 "유람단" "구경만 하고 왔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발대식을 하는 동안에도 광장 저편에서는 '서울거리공연 구석구석라이브'의 노랫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분노에 찬 발대식이 끝난 뒤에도 광장의 풍경은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150여 명의 군중들은 이재명 대표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광장 곳곳의 시민들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서명운동 포스트에는 여러 개의 서명용지가 놓였지만, 군중들은 유독 이 대표 앞으로 향했다. 휴대전화에 셀카봉을 든 채로 '이렇게 싸우라' '저렇게 싸우라'며 각자의 정견을 피력하는 군중들을 한 명 한 명 웃으며 응대하는 이재명 대표의 참을성은 '과연 대권주자'라는 경탄을 사기에 충분했다.
5월말 늦봄날, 평범한 점심시간의 평범하지 않았던 광화문의 기묘한 풍경, "우리 어민 다 죽는다" "결사 반대한다"는 구호 삼창이 울려퍼지는 비장한 서명운동의 발대식과 발랄한 광장의 라이브 공연,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한 공간에 펼쳐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08년 '광우병 괴담' 선동으로부터 2016년의 '사드 괴담' 선동까지, 계속된 괴담 선동이 백신 접종처럼 돼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 '괴담 선동'에 대한 항체와 집단면역을 형성한 것 아니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