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직후 기업결합 TF 꾸렸는데… 美·EU서 제동걸어
"2.5% 인상안 수용 못해" 조종사노조, 내달부터 '준법투쟁'
올 3월 새로 부임한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가 강력한 난기류에 휩쓸렸다. 대표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업결합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전면에서 지휘했으나 미국과 유럽의 제동으로 합병이 무산 위기에 처하면서다. 내부에선 조종사노조와의 임금협상을 두고 노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어 당분간 내홍도 짙어질 전망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조합 창립 기념일인 내달 7일 쟁의대책위원회 발대식을 열고 본격적인 쟁의 행위에 돌입한다. 노조는 앞서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전체 조합원 1095명 중 946명이 참여해 전체의 92.4%에 해당하는 874명이 찬성표를 던져 합법적으로 파업을 벌일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이는 올해 임금인상률을 두고 조종사노조는 10%대, 사측은 2.5%의 임금 인상률을 각각 제시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노조는 준법 투쟁을 통해 비행 시간 지연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후에도 사측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경우엔 파업에 돌입한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국제선은 1시간 20분전, 국내선은 1시간 전으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 시간 안에는 출근 브리핑, 비행 준비 서류 검토 등을 하기엔 역부족이다"라며 "6월 7일부터는 회사에서 정한 규칙대로 출퇴근하며 '준법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비행이 딜레이(지연)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장에 오르자마자 2개월 만에 내홍을 겪게된 원 대표는 최대한 빨리 합의를 이끌어내야하는 숙제에 당면하게 됐다. 조종사노조의 준법 투쟁이 장기화될 수록 딜레이되는 비행이 쌓이면서 운항편수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3분기부터 항공업계 성수기를 앞둔 상황에서 조종사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손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다만, 노조와 신속하게 입장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인사권을 쥐고 있는 주 채권단 산업은행 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앞서 임기 3개월을 남기고 돌연 사임한 정선권 대표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조종사 임금을 두고 산업은행에 7% 수준의 임금 인상안을 들고갔다가 4차례 퇴짜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관계자는 "정 전 대표가 산업은행 측에 조종사노조 임금 인상과 관련해 7%를 제시한 후 6%, 5%, 4% 를 연이어 제시했으나 모두 반려됐다는 사실은 이미 회사 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며 "사측이 대외적으로는 산업은행의 압박이 없다고 하지만 경영진의 거취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2.5% 이상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게다가 밖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의 생사가 걸려있는 대한항공과의 결합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면서 원 대표를 향한 압박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앞서 EU 경쟁당국이 두 회사의 기업결합 관련 중간심사보고서를 발부하며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데 이어,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검토한다는 미국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다.
특히 대한항공과의 결합은 원 대표가 부임된 이후 짊어진 숙명이기도 하다. 원 대표는 취임 직후 임원 7명을 포함해 총 42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전사 기업결합 TF'를 발족하고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면서 기업결합 승인에 공격적으로 매달려왔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두 회사의 결합은 무기한으로 미뤄진다고 봐야한다"며 "업계에서는 합병이 거의 물 건너갔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합병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을 이끌어야하는 원 대표로서는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이 경우 독자생존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임금 교섭과 별개로 추가적인 노사갈등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가 아직까지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측이든 노조에서든 어떤 입장을 취할 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도 "만일 합병이 무산돼 구조조정 수순을 밟을 경우 그간 회사를 위해 견뎌온 직원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