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포탄-러의 식량·첨단 기술… 서로 이익 기대"
푸틴, "김정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2개 도시 방문"
‘지각 대장’ 푸틴, 이번엔 30분 먼저 나와 기다려
‘국제 왕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침략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끝내 불장난을 저질렀다.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받는 외톨이 신세가 된 두 정상이 동병상련하는 마음으로 재래식 무기와 인공위성(ICBM과 사실상 같은 기술) 등 첨단 군사 기술을 주고받는 '위험천만한 거래'에 나선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약 2시간30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1시간10분 정도 만찬을 진행했다. 북·러 정상회담은 2019년 4월25일 이후 4년5개월여 만이다.
회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두 정상은 무기거래를 비롯한 군사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러시아는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며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데 항상 함께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우주기지)에 왔다"며 북한의 위성개발 조력자로 나설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화답했다. 때문에 두 나라는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정찰위성을 비롯한 첨단 군사기술을 주는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만큼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밀착이 '브로맨스'라기보단 서로 이익을 기대하는 관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두 정상의 첫 만남이 말잔치에 그친 '외교적 쇼'였다면, 이번 회담은 북·러가 보다 실질적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상호 거래'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에 선 것이라는 얘기다. 영국 BBC방송은 "북한과의 군사협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여 준 '국제질서 재편 의지'를 재확인시켜 준 또 다른 신호"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회담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노골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안보리 체제에도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으로 미국 등 서방과 대치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북한의 도발을 번번이 감싸며 추가 제재에 반대해 온 것도 모자라 이젠 기존 제재까지 허물어버린 까닭이다.
정상회담을 끝낸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극동 시찰을 계속해 해군 함대기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방위산업 도시 콤소몰스크 나 아무르 등 2개 도시를 찾았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능력을 보여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하바롭스크시에서 북동쪽으로 360㎞ 떨어져 있는 콤소몰스크 나 아무르를 방문할 때는 기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30분이나 기다리는 모습이 포착돼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달라진 러시아의 절박한 처지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담 장소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오후 12시 30분쯤 도착했다. 김 위원장이 탄 전용 열차가 도착하기 30분 전이다. 정상회담에 늦는 것으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의 평소 면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와 회담에는 4시간 15분이나 늦었고 2018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회담에는 2시간 30분 지각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회담 때는 1시간 45분,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담에선 2시간 정도 늦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선 두 나라 대통령이 모두 지각하는 바람에 결국 회담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된 적도 있다. 정상회담에서 지각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으로 보기도 한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환대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전쟁 수행에 필요한 북한의 무기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 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먼저 회담장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4년 전과 달리 러시아의 절박함이 훨씬 더 커 보였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당시 김정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실패의 충격으로 휘청거렸으며 외교적 생명줄을 찾고 있었다"며 4년이 지난 지금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참패를 모면하려는 심산으로 김정은에게서 외교적·군사적 생명줄을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