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특별물가안정체계 가동…매일 가격 점검
기업, 손실 감내해야 하는 정책 운영에 ‘고심’
전문가 “인상요인 누적되면 더 크게 오를 수도”
정부가 가격 인상 제동에 강경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올해 들어 식품업계에서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원가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 자구책으로 떠오른 ‘슈링크플레이션’도 정부 압박에 막혔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국민들을 위한 정책이라지만 기업을 위한 지원책 없이 강압만 지속하고 있어 시장 논리를 거스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올라 원가 부담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식품기업들의 노력과 어려움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식품업계가 제품 가격 인상을 추진하다 잇따라 철회하거나 인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따라 민생 안정에 동참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원재료비, 유류비 등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있어 오래가지 못 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연일 각 식품기업을 찾아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고물가가 이어지자 모든 중앙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해 품목별 물가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 중이다. 28개 품목의 가격을 매일 점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농림축산식품부의 김정욱 축산정책관이 아이스크림 업계 대표기업인 빙그레 논산공장을 찾아 물가안정 정책에 협조를 요청했다. 또 같은달 29일에는 양주필 식품산업정책관이 식재료 유통기업인 마포구 소재 CJ프레시웨이 본사를 찾아 주요 식재료 가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가격 인상을 철회하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수입 원재료 할당 관세 적용이나 수입처 다변화 같은 정책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자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일부 품목 가격을 올렸다. 그러나 정부 기조를 역행하기 쉽지 않아 이를 번복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너무 앞장서 자연스러운 시장경제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듯하다”며 “지금의 제재나 압박이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 기업들이 언제까지 가격 인상에 대한 압박을 용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가 됐든 결국 물가는 상승하게 되어 있는데 오히려 과도한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뚜기, 풀무원, 롯데웰푸드는 최근 편의점 등에 보낸 가격 인상 공문을 철회했다. 오뚜기는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가정간편식, 소스류 등 제품 24종 가격을 5~17%가량 인상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27일 취소했다.
풀무원은 편의점업계에 그래놀라 등 제품 3종의 가격을 이달부터 100원 인상하겠다고 알렸지만 마찬가지로 지난달 28일 가격 인상을 번복했다. 같은 날 롯데웰푸드도 편의점 CU에서 파는 빅팜을 종전 2000원에서 이달부터 2200원으로 10% 올리기로 한 결정을 거둬들였다.
롯데웰푸드는 GS25에서 지난 9월1일부터 해당 제품 가격을 동일한 인상률을 적용해 올렸지만, 이번 철회로 GS25에서의 판매 가격도 2200원에서 2000원으로 다시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식품기업들의 이런 결정이 임시 조치에 머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부자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가운데, 적정 수준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선 내년 상반기에는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가격 인상 요인이 누적되고 국제 곡물가, 유가 상승분이 국내 제조원가에 반영되는 데에는 수개월이 걸리면서 추후 인상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하이트진로의 경우 지난 2월 말 “당분간 소주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공개했다가 오래 버티지 못 하고 10월 말 대표 제품인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의 출고가를 6.95% 올린 바 있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3월까지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며 “우려되는 점은 기업들이 원재료 값을 충분히 반영해 판매하지 못 하게 될 수 있다는 나쁜 학습 효과가 생겨서 기업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총선이 끝났을 때 지금 올리지 못한 것을 플러스 알파해서 올릴 수 있다. 제조업체도 중요하지만 유통구조도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통업체의 협조도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침했다.
반대의견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은 인구 수도 줄어들고 있고 한계가 크다. 소비자단체도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k컨텐츠 시장 호황 등 혜택을 보고 있으니 세계 시장으로 판로를 뚫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윤 극대화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품 가격인상 제동에..."원가라도 줄이자" 안간힘 [식료품 대혼란②]>에서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