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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작, 미화 없는 거장의 사생활 [OTT 내비게이션⑬]


입력 2024.02.23 08:36 수정 2024.02.23 08:3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두 번째 연출작

캐리 멀리건, 관객 공감 길어 올리는 호연

무언가 시작되었던 그때 ⓒ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스틸컷, 이하 넷플릭스 제공

시상식 후보에 오르는 작품엔 이유가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7개 부문이라면 우연이나 실수에 의한 노미네이트라고 할 수 없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오는 3월 10일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분장상, 음향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어떤 영화이기에 7개 부문에서 칭찬받은 걸까.


6시간의 분장,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 ⓒ

영화의 원제는 ‘마에스트로’이고, 국내 개봉 제목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다. 각각에 1장 1단이 있다.


지휘도 하고, 작곡도 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가르치고, 피아노도 치는 사람. 작곡도 교향곡에 국한하지 않고 오페라, 뮤지컬, 영화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들을 짓는 사람. 정치 참여도 활발히 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 이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는 마스터가 레너드 번스타인인 것을 생각하면, 제목은 ‘마에스트로’가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마에스트로, 지휘자들이 번스타인과 같은 건 아니라 번스타인의 특성을 마에스트로의 그것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인물을 특정하여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라 한 게 제목으로 나아 보인다.


다만,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일생 전체를 연대기적으로 조망하거나 뛰어난 업적에 주목한 위인전으로 푼 게 아니라. 자연인 번스타인의 사랑과 민감한 사생활, 그에 따른 본인과 가족 모두의 고뇌와 갈등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일상이 녹아든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 번스타인’이 적절할 듯도 싶다. 그리고 끝까지 보면, 번스타인마저 뺀, 다른 제목이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관계’ 사랑의 시작 ⓒ

직접 보기 전에는 영화 ‘스타 이즈 본’으로 연출 데뷔전을 멋지게 치른 브래들리 쿠퍼의 두 번째 연출작이라는 점이 흥미를 돋웠다.


배우, 그것도 영화 ‘A 특공대’에서 멋쟁이 역할을 하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본인은 눈치 없고 감정 조절 힘들면서도 다른 이의 ‘연애 세포’를 깨우는 섹시 가이면서. 연출 데뷔작은 스타와 무명 가수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레이디 가가를 기용해 지독하게 절절한 사랑을 함께 보여주더니. 이번엔 실존했던 인물, 그것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 명성을 지녔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칠레 출신의 배우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한층 더 지독하고 깊이 있게 사랑과 인생을 탐구했다.


‘스타 이즈 본’에서 주연과 연출을 병행했듯,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다수의 시상식에서 분장상 후보로 올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브래들리 쿠퍼는 6시간의 분장을 통해 레너드 번스타인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번스타인 특유의 지휘하는 모습, 성별 가리지 않고 모두의 이목을 끌고 사랑받는 매력까지 완벽하다.


특히나 번스타인 아내 역에 캐리 멀리건을 캐스팅한 건 감독으로서 최상의 안목이다. 동성애자임을 알면서도 청혼하는 당당함, ‘번스타인 아내’라는 지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자기 무덤을 판 어리석음, 어리석음의 바탕에 깔린 번스타인을 향한 뜨거운 사랑, 사랑이 크니 그만큼 커지는 고독과 심적 고통을 연기파 캐리 멀리건답게 절절히 표현했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공감을 길어 올린다.


풍지평파를 겪고 난 후의 단단함 ⓒ

브래들리 쿠퍼, 캐리 멀리건의 설득력 있는 열연 덕이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얘기였음을 잊게 한다. 게이인데 동성 아닌 이성과 결혼한 남자, 게이인 남편을 이성애로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사랑이 피어나는 설렘부터 농도를 더해가는 신뢰와 사랑, 사랑의 변질과 고통의 축적, 서로를 너무 알아버린 데서 오는 골 깊은 환멸, 위기 속에서 다시 하나 되는 가족애와 인간애가 광폭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직업이나 성적 정체성 등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거나 겪을 사랑의 탄생에서 소멸, 인간의 태어남에서 죽음까지를 단 2시간으로 압축해 ‘진하게’ 체험하는 느낌이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보기 시작했을 땐 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외모나 몸짓이 레너드 번스타인과 어느 정도 닮았는지,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이 과연 번스타인의 것인지 아닌지, 그가 작곡한 대표작품 가운데 어느 것들이 선택돼 화면에 등장할지에 관심을 썼다. 번스타인은 양성애자였던 것인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에서 헷갈렸던 것인지, 흔들린 적 없는 동성애자인데 단지 현실적 필요로 결혼했던 것인지, 성적으로는 남성을 원하고 감성적으로는 여성을 원했던 것인지, 여러 지인의 회고담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했다.


괜찮다. 관객인 내가 ‘헛짓’하고 있어도 좋은 작품은 나를 제대로 끌어 준다. 세계적 저명인사여도 개인적 고뇌는 같고, 번스타인 부부가 겪는 어려움도 그들의 부부관계가 출발부터 잘못돼서가 아니고 여느 사람들처럼 ‘사랑의 원형’을 반복한 것뿐이다.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 전 우주적으로 통용되고 적용될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호평받고 수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이유다.


미화 없는 인물 영화, 위인전 아닌 누구나의 이야기 ⓒ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로 두 주연배우의 호연에 감독의 연출을 보태고 싶다. 어떤 연출인가 하니,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는 주인공에 대한 신격화가 없다. 본받을 인물이라고 미화거나 뭐든 잘하는 천재라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이기적 면모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실망을 준 일도, 멈출 수 없는 인간에 관한 관심과 사랑도, 손에서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 끔찍한 흡연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2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70년 인생을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주듯, 레너드 번스타인의 인생을 천천히 물 흘리듯 흘려보낸다.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 자연스러움 위에 존재하니 지휘하는 배우의 몸짓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흉내로 보였던 국내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연기와 연출. 연출자와 배우가 한 사람이어서 메워진 거리감이라고? 그 답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 직접 답을 내보자. 오스카 7개 부문 후보작,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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