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의 아이디어와 전라남도 협력 속에 애물단지가 보물단지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고 창의적인 정책으로 바로 세우는 노력을 경주할 때, 성공사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F1 경주장’으로 불리는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이다.
지난 2010년 개장한 F1 경주장은 국제 규격에 맞춘 국내 유일의 서킷으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혈세 4300억 원이 투입된 이곳은 ‘세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쓴 채 수년 째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혈세 낭비라는 이슈가 떠오를 때 미디어 자료화면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곳이다.
2010~2013년 전남 영암서 개최된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서킷 건설과 대회 비용 등 약 8700억 원을 퍼부었는데 서킷 건설 비용을 제외한 누적 적자만 1900억 원을 상회했다. 그로 인해 계약 기간(2010~2017)도 채우지 못하고 2013년 중도 포기했다. 과거 전라남도는 F1 그랑프리를 유치하면서 5조원의 경제유발 효과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전남도민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F1 경주장은 최근 영암군과 전라남도 산하 공기업 전남개발공사의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 추진단 협력 속에 보물단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영암 F1 경주장은 지난해 1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 스포츠-관광-문화가 어우러진 ‘핫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영암군은 국내 유일 FIA 1등급 F1 경주장을 보유한 지역 특성을 살려 스포츠와 관광, 문화가 공존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 영암군과 F1 경주장의 매력을 키워가고 있다.
F1 경주장 본연의 기능을 살린 '전국 대학생 포뮬러 자작 자동차 대회', '전국 베스트 튜닝카 선발대회'를 개최해 전국 자동차경주 동호인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카트장 일대에 조성된 자동차복합문화공간에는 아마추어 레이싱을 경험하는 드라이빙 센터와 자동차 경주를 즐길 수 있는 가상체험시설도 있다. 네트 어드벤처와 자전거도로, 그리고 트래킹 코스도 눈길을 모은다.
자동차 마니아층을 위한 시설만 있는 게 아니다. 지역민은 물론이고 관광객의 새로운 여가 문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확대되고 있다.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민 레저스포츠파크도 눈에 띈다. 인라인 스케이트장과 어린이 드라이빙 체험장, 짚 와이어(200m), 얕은 수심의 발물 놀이장, 드론 연습장 등도 있다. 25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던 '전국 마라톤대회'를 비롯해 '전국 듀애슬론대회'에는 500여명의 국내외 동호인 등이 참가, 서킷에서 마라톤과 자전거경주를 펼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모터뮤직페스타'도 개최해 F1 경주장의 변신을 꾀했다.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현대 N 페스티벌'과 공동 개최하고, 국내 최정상급 힙합 뮤지션들이 출연한 모터뮤직페스타 공연에는 3000여 명이 관람객이 찾아 F1 경기장을 달궜다. 영암군은 모터뮤직페스타를 영암 모터피아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핵심 프로그램으로 여기고, 영암군 대표 페스티벌로 이어가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런 행사는 지역민과 방문객에게 F1 경주장이 자동차경주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행사장과 문화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기에 손색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암군은 복수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올해도 다양한 행사를 이어가며 F1 경주장의 활용도를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영암군은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주관 ‘지역특화 스포츠관광산업 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2023~2025년 동안 30억 원의 지원을 확보했다. 영암군 제안 등을 통해 F1 경주장이 지난해 5개 대회, 2개 축제장으로 활용되면서 1만여 명의 방문객을 끌어 모아 40여억 원의 경제효과도 일으켰다. 문체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영암군이 사업 첫해 3년 지원액을 넘는 경제효과를 기록한 셈이다.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도 선정된 영암군은 지난 12~13일 ‘2024 국제 DF-1 드론 레이싱대회’를 F1 경주장에서 개최했다. 드론 레이싱은 초고성능 드론을 이용해 공중에서 펼쳐지는 경주다. 모터스포츠 경기장에서 색다른 레이싱을 볼 수 있다는 점, F1 경주장의 활용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 ‘2024 전남 캠핑관광 박람회’의 개최지 공모 결과, 영암군에서 제안한 F1 경주장이 선정돼 도비 4억원도 확보했다. F1 서킷에서 펼치는 에너저틱(Energetic) 캠핑 페스티벌’을 펼친다는 계획이 평가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많은 캠핑객을 불러모으며 캠핑문화 확산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이번 행사에는 캠핑족 등 1만2,000여 명이 방문해 행사를 즐겼다. 55개 캠핑 관련 기업이 캠핑카·카라반 등 최신 트랜드의 장비를 선보이며 각종 판매부스에서 총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셀프 캠핑촌에 설치된 파티홀에서는 웰컴파티와 버스킹이 진행됐고, 캠핑 팝업스토어에서는 브랜드 캠핑용품 전시홍보, 벼룩장터, 중고용품 직거래장터가 펼쳐졌다.
지난 26일 캠핑관광 박람회에서 만난 30대 남성 참가자는 “색다른 캠핑이었다. 자동차 경주장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영암호 등 자연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에어바운스 시설도 있어 아이들이 놀기도 좋았다.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암군과 전남개발공사 협력 속에 다채로운 행사들로 F1 경주장 방문자들은 증가 추세다. F1 경주장 관계자는 “혈세 낭비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곳에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경주장 안팎으로 확장할 사업들이 많다. 지금처럼 영암군의 적극적인 활용 의지와 적극적인 협의가 있다면 빠르게 추진되고 여러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전남 GT’ 등 굵직한 대회와 행사 등을 통해 F1 경주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영암의 매력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트렌드에 맞고 연령대에 맞는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창의적인 정책 발굴이다.
우승희 군수는 “F1 경주장 활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매년 대규모 모터스포츠 축제를 유치하겠다”면서 “관광객이 영암에 머무르는 야간콘텐츠로 체류형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겠다. 스포츠 관광 도시 영암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역의 대표축제인 왕인문화축제, 월출산 국화축제, 마한축제 등과 다양한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들도 접목해 관광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봄 개최된 영암왕인문화축제를 통해 군서면 구림마을 상대포는 영암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여유를 주는 힐링 장소로도 손꼽힌다.
월출산달빛축제는 올해 삼호읍·학산면으로 공간을 확대해 지역민의 큰 호응을 얻었고,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 선정돼 골목상권 등 지역경제에 활력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암군은 한옥체험관 리모델링, 마을호텔 조성 등 ‘호남명촌 구림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구림마을을 전주 한옥마을과 견줄 체류형 문화관광지로 바꿀 계획도 세웠다. 월출산국립공원의 가치를 드높일 ‘국립공원 박람회(11.1~3)가 올해 처음 개최되는데 영암군은 2026년까지 ‘대한민국 국립공원 박람회’로 키워간다는 목표다. 이색 체험관광과 먹거리(낙지거리)·정원·생태 힐링 테마지구가 포함된 ‘월출산 천황사 권역 종합개발계획’을 통한 경제관광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더 나아가 우승희 군수는 “영암이 F1 경주장을 중심으로 스포츠관광으로 조명을 받고 있지만, 영암은 자동차 제조업의 중요 지역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며 영암군의 '첨단 모터피아' 청사진을 내놓았다. 2차 산업인 첨단 자동차와 3차 산업인 모터스포츠의 공존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자는 내용이다.
영암군은 윤석열 대통령의 '영암~광주 초고속도로(47km) 건설' 추진에 맞춰 '첨단 모터피아 영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영암군 관계자는 “국제자동차경주연맹이 1등급으로 판정한 국내 유일의 F1 경주장을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초고속도로까지 더해지면 자율형 주행차의 테스트 베드는 물론 관광과 비즈니스를 한꺼번에 잡는 '첨단 모터피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고속도로 도입 정책 방안 연구용역비' 3억원이 올해 정부예산에 반영된 것에 대해 우승희 군수는 “그동안 국회와 정부를 설득해 온 전라남도의 공이 크다”며 “F1 경주장을 품은 영암군이 그리는 '모터피아'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그 효과는 자동차산업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