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트레이닝 시스템 부재"
“스윙은 비상시에 투입이 되는데,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할 순 없죠. 스윙이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건, 다른 배우들이 모두 무탈하게 공연을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뮤지컬에서 앙상블을 커버하는 스윙(Swing) 배우들은 주연 배우들만큼이나 바쁘다. 보통 4~5개에 달하는 캐릭터의 동선과 춤, 노래를 완벽히 숙지해야 하니, 공연에 오르는 배우들보다도 더 많은 연습량이 요구된다.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공연 중에 마냥 쉬는 것도 아니다. 실시간으로 무대를 모니터링하고 대사를 맞춰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안무를 점검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안타까운 건 가장 까다로운 포지션임에도 이들을 위한 별도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데뷔 10년을 맞은 한 배우는 “리딩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연습이 시작되면 배우들에게 동선 등을 설명해 준다. 그때 스윙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배우들을 쫓아다니면서 같이 듣는 식”이라며 “제일 난감할 때는 제가 맡은 세 명의 배역이 한꺼번에 설명을 받는 순간이다. 거의 소머즈 수준이 돼야 하고, 분신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앙상블 배우가 크고 작은 부상을 겪어도 대타가 없어 무대에 오르는 일이 허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뮤지컬 배우는 “한 공연에서 갈비뼈에 부상을 당해서 눕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당시 스윙이 없다보니 병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우 역시 “스윙이 없어서 앙상블 한 명이 다치면 모든 앙상블의 동선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엔 대부분의 작품에서 스윙을 최소 2명 이상을 두고 있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엔 스윙에게도 앙상블 비용이 지급되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 기존 앙상블보다 페이가 많아서 제작비 출혈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요즘에는 스윙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또 스윙을 위한 오디션을 따로 진행하진 않지만 앙상블 중에 스윙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 있는 배우를 채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배우들조차 스윙 배역을 낮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올해 19년째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A씨는 “주변에서조차 스윙으로 작품에 들어간다고 하면 ‘어떡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외국에서는 다재다능한 배우가 스윙을 맡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어린 친구들, 신인들이 스윙을 맡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분명 한국의 스윙 시스템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선 배우들부터 스윙이라는 역할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최근까지 ‘킹키부츠’에서 스윙 포지션을 맡았던 뮤지컬 배우 임동주 역시 “스윙은 분명 매력 있는 역할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고, 결코 쉽게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아니”라며 “그럼에도 한국에서 스윙을 하면 ‘브로드웨이에서는 베테랑이자 기량이 뛰어난 배우가 스윙을 맡고 그 대우도 한국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곧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지금의 기형적인 한국 뮤지컬 시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