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을 찾은 작가 한강은 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2024년에 계엄 상황이 전개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한강은 이날 스톡홀롬 노벨박물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서 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지난 며칠 동안 아마 많은 한국분이 그랬을텐데, 충격도 많이 받았고 아직도 상황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뉴스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1979~1981년 비상계엄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 지역에 9일간, 10·26사건 다음날인 1979년 10월 27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 439일간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시행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데 이어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4일 새벽 계엄령 해제했다.
한강은 “이번 2024년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돼서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저도 그 모습들을 지켜봤는데 장갑차 앞에서 멈추고 애를 쓰셨던 분들도 봤고, 맨손으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봤다.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도 봤다”고 전했다. 이어 “마지막 군인들 물러갈 땐 아들들에게 하듯 ‘잘 가라’고 이야기하는 모습도 봤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진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젊은 경찰과 군인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는 한강은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거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최대한 합법적으로 움직이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비상계엄) 명령을 내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행동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마련하려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특히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소설 ‘채식주의자’를 둘러싼 국내의 오해에 대해서도 짚었다. 최근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는 이 소설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라며 초·중·고교 도서관 비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한강 “채식주의자는 2019년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라며 “(책은)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이 책의 운명이란 생각도 든다. 책을 쓴 사람으로선 유해 도서 등으로 여겨지는 건 가슴 아팠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 한강은 “문학이란 건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라며 “그런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래서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그는 “이 상은 문학에게 주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저에게 쏟아지는 개인적 관심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한 달 넘게 생각을 해보니 이 상은 문학에게 주는 것이고, 문학에게 주는 상을 제가 이번에 받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털어놨다.
한강은 이어 “나는 계속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부담 없이”라며 “나는 다시 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벨 주간에는 할 게 너무 많다”며 “오늘이 가장 어려운 날이다. 오늘이 끝나면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
스웨덴 한림원은 앞서 10월 10일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상 시상식은 오는 10일 열릴 예정이다. 스톡홀름을 찾은 한강은 시상식 전후로 진행되는 ‘노벨 위크’(Nobel Week) 기간에 강연과 리셉션, 다문화학교 방문 등 공식 일정 7개와 비공개 행사 5개에 참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