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시장이 보릿고개를 보내고 있는 사이,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는 스타 배우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공연계의 대중화와 흥행에 긍정적 효과로 이어진다는 긍정적 반응과 함께 ‘세대교체’를 강조하면서도 ‘경력직’만 고집하면서 오히려 시장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는 부정적 시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은 올해 5월 LG아트센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연극 ‘헤다 가블러’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고전 명작 ‘헤다 가블러’에 배우 이영애가 캐스팅 물망에 오르면서다. LG아트센터 측은 현재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간 이영애는 TV 드라마와 영화 등을 위주로 활동해왔다. 이영애의 출연이 결정되면 1993년 연극 ‘짜장면’ 이후 32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이에 앞서 LG아트센터 지난해 기획공연 ‘벚꽃동산’에는 배우 전도연이 27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로 한 차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엔 ‘넷플릭스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박해수도 참여하며 티켓 파워에 힘을 보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연인’ 등에서 이름을 알린 안은진은 7년 만에 ‘사일런트 스카이’로 연극 무대에 올랐고, 박성웅은 24년 만에 ‘랑데부’로, 이엘은 ‘꽃의 비밀’로 7년 만에, 김상경과 신동미는 ‘대학살의 신’으로 각각 15년,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최근 몇 년간 연극 무대에 데뷔한 ‘경력직’ 배우들도 수두룩하다. 배우 조승우는 데뷔 24년 만에 ‘햄릿’으로 연극 무대에 처음 올랐고, 배우 김유정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이동휘와 김준한은 ‘타인의 삶’으로, 유승호와 고준희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최민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로, 배우 이현우는 ‘사운드 인사이드’로 연극계에 데뷔했다.
뮤지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델 겸 배우 장윤주는 지난해 ‘아이참’으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고, 이성경도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를 맡아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에 앞서 솔라는 ‘마타하리(2022)로, 김희재는 ’모차르트!‘(2023)로, 박보검은 ‘렛미플라이’(2023)로, 박진주는 ‘레드북’(2023)으로, 김범과 손우현은 ‘젠틀맨스 가이드’(2024)로, 정지소는 ‘4월은 너의 거짓말’(2024)로 데뷔하는 식이다.
연극, 뮤지컬계의 스타 배우 유입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공연 홍보 담당자는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 흥행하는 건 당연한 이치고, 제작사는 수익을 내야하는 집단이다. 뮤지컬이나 연극이나 공연계는 늘 신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기존 배우들과 함께 스타 배우들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공연계의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 배우들의 티켓 파워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이들이 출연하는 대부분의 작품과 회차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기 일쑤고, 티켓 판매액만 보더라도 KOPIS 연극 분야 상위 10 개 공연 목록(2023년 총결산)에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 ‘파우스트’ ‘아마데우스’ ‘나무 위의 군대’ ‘라스트 세션’ 등 영화, 드라마 등으로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 공연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일각에선 매체에서 활약하던 인지도 높은 경력직 배우들과 아이돌 가수들이 유입되면서 점차 높은 출연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져 제작비와 티켓값이 오르고, 기존 공연계를 지키던 주연급 배우들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공연계가 오히려 인지도 높은 또 다른 ‘경력직’을 채우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연히 관객을 끌어모으고 수익을 내는 것이 제작사로서 중요한 과제이지만, 당장의 수익만을 쫓기보다는 장기적인 시장 가능성을 바라봐야 한다”면서 “스타 배우의 유입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작품의 특성과 캐릭터에 맞는 캐스팅이 필요하고 공연 시장의 질적인 성장을 고려한 적정선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