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멕시코 수입품 25% 추가관세 부과
기아, 멕시코서 K4 미국 수출… 연 1조 가량 손실 예상
현대차그룹이 예상만 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됐다. 오는 4일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의 추가관세를 매기는 건데, 특히 현대차그룹의 경우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와 부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 등 전세계 국가에 10~20%의 관세를 매기는 '보편관세' 정책은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도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생산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작년 대선에서부터 내걸었던 공약을 현실화한 것이다. 불법 이민 및 마약 유입 방지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책 실행의 대외적 취지지만, 내면에는 전세계 최대 시장이자 세계 최대 패권국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한 자국우선주의가 숨어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멕시코에서 엔진, 변속기, 모듈 등 부품과 완성차를 미국으로 수출해왔던 현대차그룹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됐다. 모듈·램프(현대모비스), 엔진(현대위아), 변속기(현대트랜시스) 뿐 아니라 기아의 경우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시 소재 공장에서 'K4' 차종 12만대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멕시코 관세 부과로 입는 피해액은 연간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기아 K4만 보더라도 작년 미국 수출량인 12만8000대의 미국 판매가(약 4000만원)에 25%의 관세를 적용하면 대당 약 1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9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이르며, 여기에 부품 물량을 합치면 손실액은 더 크다.
미국 내 현대차·기아 차량의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손실을 그대로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가격 인상이 가장 빠른 대처 방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판매 가격 인상 시 가격 경쟁력 악화로 지금과 같은 판매량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피해액을 그대로 감수할 가능성도 있다. 어떻게 대처해도 잃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다.
한국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보편관세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관세부과를 선언한 상황이다. 그는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EU관세 부과 시점을 묻는 질문에 "시간표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매우 곧'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생산 늘려도 못 피한다… 정부 역할에 '한목소리'
현대차그룹으로선 멕시코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 외에는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다. 당장 공급망을 전환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시간동안은 결국 관세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단기적으로 소나기가 쏟아지는건데, 이걸 피해가려면 기업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원가 절감에도 시간이 걸리고, 미국 내 생산도 공급망을 전환하기 어려워 1년 이상은 시간이 걸린다"며 "최소 1년 동안은 적자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공장을 풀가동한다 하더라도 미국 내 물량 전체를 커버하기는 어렵지만, 피해액을 최대한 줄여 수익성 훼손을 막는 데 집중하겠다는 심산이다.
현대차·기아는 조지아 전기차 전용 공장(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하이브리드,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깔아 유연하게 대응하면, 미국 전체 물량의 60% 가량을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족한 물량을 한국에서 수출한다 하더라도 멕시코, 캐나다 공장 대비 관세부과율이 적다.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사들과 비교해서도 피해가 적을 것으로 봤다.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의 경우 과거 '88통상법' 당시 미국의 압박으로 최대 교역국인 캐나다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고, 현재도 캐나다·멕시코에서 주요 차종들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관세 정책은) 우리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래도 미국 내 공장이 있고, 미국 공장 생산 비중이 60% 가까이 되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이라 볼 수 있다"며 "반면 혼다나 토요타의 경우, 멕시코와 캐나다에 공장을 많이 갖고 있고, 거기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물량이 많기 때문에 부정적 효과 측면에서 본다고 하면 우리가 경쟁사 대비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 전무도 지난달 24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나가는 물량이 12만 대 정도다. K4 한 차종으로 25% 관세 영향을 받는다"며 "다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업체는 기아 말고도 많다. 특히나 기아처럼 고가 RV 위주로 판매하는 업체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관세만큼 추가부담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가격인상이라든지 생산지 조정을 통해서든 단기적으로 대비를 하고 있다"며 "수익성을 훼손시킬만한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그룹과 동반 진출한 부품 협력업체의 경우 더 큰 문제다. 현재 현대차그룹과 함께 미국, 멕시코에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는 약 150개로, 당장 멕시코 생산이 줄면 직격탄을 맞는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에서의 수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한국 부품업체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물론 각 협력사들에게 맞춤형으로 기업을 지원해야한다는 평가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기업이 대응 전략을 수립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가 피해액을 보전해줘야한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한다. 그사이 기업들은 로비도하고, 원가를 절감하고, 공급망을 다변화 해야한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이미 다른 국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과 특히 현지 진출한 업체가 우선이다. 그 다음에는 국내 부품업계를 봐야한다. 핀셋정책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