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CJ토월극장
“‘시라노’는 배우로서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준 작품입니다.”
2020년,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뮤지컬 배우 조형균의 말이다. 뮤지컬 ‘시라노’(2019)의 주인공 시라노 역으로 들어 올린 이 트로피는 단순한 ‘보상’의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로서 걸어온 십여년의 시간과 노력이 응축된 ‘결정체’와 같다.
2007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조형균은 ‘그리스’ ‘렌트’ ‘여신님이 보고 계셔’ ‘헤드윅’ ‘그날들’ ‘더데빌’ ‘하데스타운’ 등 다양한 뮤지컬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무엇보다 조형균은 작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온전히 작품과 캐릭터에 녹아들면서 ‘캐릭터 자체’로 존재해왔다.
조형균은 “톤과 발성에 관한 연구를 집착 수준으로 한다”고 말했다.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도 매번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집스럽게 캐릭터를 체화하는 그의 습관 덕이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잡생각도 들고 고민도 많았다”던 조형균에게 ‘시라노’가 확신을 안겨준 셈이다.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시라노’에서도 조형균은 다시 시라노를 연기한다.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자유분방한 철학자이자, 풍자 작가였고 뛰어난 검술사였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1619~1656)의 삶을 담는다.
“‘시라노’는 제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5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됐는데 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라 감사한 마음만큼 부담감도 큽니다. 요즘은 빠르고 감각적인 게 추세고, 공연도 그런 추세에서 자유롭지 않죠. 그러데 ‘시라노’는 옛날 어투와 서정적인 대사 등 묵직한 고전의 맛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조형균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라노’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그대로 살려냈다. 뮤지컬 배우 조형균의 모습은 지우고, 온전히 최고의 검술사이자 뛰어난 자유분방한 철학가인 시라노로서 무대에 오른다.
“재연 때 공연 말미쯤에 깨달았던 디테일을 이번 시즌엔 처음부터 잘 살리려고 노력하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라노의 캐릭터성과 대사 톤이 이전보다 한 층 더 유쾌하게 바뀌었다는 점이 이번 시즌의 가장 큰 변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라노’ 재연이 조형균에게 ‘확신’을 준 시즌이었다면, 이번 삼연은 ‘배우로서의 마음’을 돌아보도록 한 시즌이다. 조형균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불과 2년 전 번아웃이 올 정도로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쉬거나 일이 없을 때도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지만, 재작년에는 작품을 많이 했는데도 스스로가 발전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나이적인 부분에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 전부터 계속됐던 고민이 재작년에 번아웃처럼 터진 것 같아요.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 한 단계를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어요. 그런데 고민의 끝은 별 거 없더라고요. 현재 내게 주어진 작품에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돌이켜 봤을 때 한 단계 성장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조형균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신념을 가진 시라노의 대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정국과 맞물려 시라노의 대사가 더 깊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시라노의 독백 대사 중 ‘내 오랜 친구여, 이곳은 아직 혼란하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연기하면서 많이 이입이 되고,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시라노’가 관객들의 쌓였던 감정을 해소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나라가 안정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안정돼야 예술은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