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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들의 발표회 [조남대의 은퇴일기(66)]


입력 2025.02.11 14:01 수정 2025.02.11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봄이 오면 대지는 생명의 숨결을 품는다. 초목은 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고목조차도 꽃을 피우며 생명의 끈질긴 의지를 보여준다. 세월의 무게를 이고선 나무가 주는 깊은 울림처럼 인생 황혼을 맞이하여 쉼터를 찾는 시니어들의 열정 또한 젊은 날과 다를 바 없다. 신중년들의 학구열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자신을 가꾸려는 간절한 몸짓이 아니겠는가.


ⓒ반포느티나무쉼터 소개 및 강의 안내판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재건축 아파트 단지 안에 반포느티나무쉼터가 문을 열었다. 쉼터는 55세 이상 신중년들을 위한 장이자 새로운 도전의 공간이다. 연극반, 보컬팀, 일어회화, 통기타반, 수필 쓰기, 댄스스포츠, 시니어모델 워킹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배움을 향한 열기로 발걸음이 활발하다. 분기 초 강좌신청 경쟁이 치열한 것을 보면 신중년들의 삶이 역동적임을 증명한다. 쉼터를 찾는 이들의 모습은 옷차림과 몸매도 정성껏 다듬어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오래된 나무가 더욱 깊은 뿌리로 서 있는 것처럼 삶 또한 더욱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진다.



ⓒ발표회장을 가득 매운 수강생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사회로 흘러나왔지만 마땅한 휴식처를 찾지 못하자 자연스럽게 문화센터로 모여든다. 인기 강좌는 수강 신청을 조금만 늦게 하면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다. 저렴한 수강료와 시간적인 여유 덕분에 두세 개의 강좌를 듣는 경우도 많다. 아내 또한 동네 주민센터에서 매 분기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우지만 손이 느려 종종 수강 신청을 놓쳐 동네 후배의 도움을 받곤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점 현대문명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시니어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 어찌 이를 거스를 수 있으랴.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고목처럼 가지가 쳐지고 줄기에는 상처 자국으로 울퉁불퉁하다. 자식 키우면서 얻은 훈장이니 그 또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또 한 계절을 맞아 새롭게 피어나겠지.



ⓒ반포느니나무쉼터 수필강의 파워포인트


봄바람이 스며들 듯 내 강의실에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든다. 십여명 남짓한 수강생들과 함께 수필을 쓰며 이야기를 나눈다. 대여섯명은 지속해서 강의를 들고 있으나 여타 분들은 호기심을 안고 찾아왔지만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고 또 새로운 분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여섯 달쯤 지나자 몇몇은 등단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글솜씨가 좋아졌다. 댄스스포츠나 통기타반 처럼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차분하게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 보면 대견하다. 은퇴 후 삶을 즐길 나이에 공부하듯 글쓰기를 마주해야 하니 부담될 수도 있을 텐데 굳은 의지와 열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분기마다 빠짐없이 재등록하는 분들을 보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고, 더욱 정성을 다해 함께 걷고 싶어진다.


ⓒ 수필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칠십을 넘어 팔십을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손으로 꾹꾹 눌러쓴 원고를 다른 이의 손을 빌려 타이핑하고 프린트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고단할 것이다. 처음에는 한 줄 한 줄 고민하며 어렵게 글을 써 내려간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요령을 익혀 점점 더 유려한 문장을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짧은 시를 적어 오던 이가 수필을 쓰기 시작하고, 여행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문학적 색채를 보여준다. 합평과 첨삭을 거듭하고 수정과 다듬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 편의 빛나는 수필이 탄생한다. 잘 썼다고 이야기해 주면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기쁨이 번진다. 덩달아 나도 뿌듯하다. 나 역시 수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년퇴직 후 수필모임에서 글을 배우고 합평을 거치고 조금씩 나아졌다. 때로는 동료들의 신랄한 지적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지만, 한 마디의 조언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도록 성장시킨 것이 아닐까. 글을 쓰며 피어나는 미소, 성취의 기쁨, 그리고 서로 북돋아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오늘도 함께 걸으며 가르치고 또 배운다.


ⓒ작품발표회 모습
ⓒ게시한 수필작품을 읽어보는 관람객들


연말이 다가오자 그동안 배운 것에 대해 반별로 전시회와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수강생들에게 그동안 작성한 수필을 제출해 달라고 하자 쑥스럽다며 망설인다. 나이 들어 배운 익숙지 않은 글을 자녀나 친지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분들을 설득하여 제출된 여덟 편의 수필을 A3 용지에 인쇄하여 액자에 넣어 메인홀에 전시하자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전시회 날 지인들이 화분을 들고 찾아오고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은 감탄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출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 전시회에 더 나은 작품으로 당당히 뽐내고 싶은 열망이 쏟지 않았을까. 나 또한 가르친 보람을 느끼며, 내년에는 등단도 하고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열성을 다해야겠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남을 가르치고 많은 이들 앞에 선보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기타반의 발표회 장면


다른 반의 발표회가 열린 강당도 열기로 가득하다. 모델 워킹반은 세련된 복장을 차려입고 자신을 뽐내며 붉은 카펫 위를 걷는다. 걸음은 환호와 박수 소리에 프로처럼 우아해진다. 일어 회화반은 계절의 변화를 유창한 발음으로 노래를 풀어내어 여행길에 가이드로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기타반의 연주는 나도 한번 배워볼까 하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연극반이나 댄스스포츠반 공연도 얼마나 연습했으면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섯 달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얼굴에는 성취의 기쁨과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서투른 글솜씨, 틀리는 음정, 어긋나는 박자도 있었지만, 박수 소리는 크고 웃음소리는 더 높다.


ⓒ 붋은 카펫 위를 걷고 있는 모델워킹반 발표회 장면


ⓒ 댄스스포츠반 공연 모습


한낮의 햇살처럼 배움의 열기가 쉼터를 가득 채운다. 은퇴한 시니어이지만, 눈빛은 마치 새싹처럼 푸르고 생동감 넘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살아 있는 한 배움을 멈추지 마라”고 한 것처럼 높은 연륜과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귀를 세워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며 감사함으로 가르친다. 그들의 글이 날마다 깊이를 더해 갈수록 내 마음은 환희와 보람으로 가득 찬다. 발표회를 마치며 더욱 뜨거운 열정을 품게 되었다. 다음에는 모든 이가 ‘수필가’라는 이름을 당당히 지닐 수 있도록 한 줄기 햇살이 되고 싶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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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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