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펀트 맨’
지난달 17일 컬트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그는 1978년 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통해 컬트영화 감독으로 데뷔를 알렸고 1980년 ‘엘리펀트 맨’으로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및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블루벨벳’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아카데미 후보상에 3회 올랐으며 1990년 ‘광란의 사랑’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2001년 개봉한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는 BBC 선정 최고의 영화,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선정 최고의 영화 1위, 죽기 전에 봐야 하는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괴기스럽고 흉물스러운 영화 ‘엘리펀트 맨’이 더 기억에 남는다. 유년 시절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큰 정서적 감동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19세기 영국 런던 엘리펀트 맨이라 불러며 서커스단에서 지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존 메릭(존 허트 분)은 자신의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외모 때문에 엘리펀트 맨으로 불리며 온갖 조롱과 학대를 받으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그러든 어느 날 외과 의사 프레데릭(안소니 홉킨스 분)은 존 메릭에게 의학적 흥미를 느끼고 서커스 단장을 설득해 자신의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까지 초대하기도 한다. 존은 자신을 반겨주는 프레데릭과 그의 가족을 통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는 냉철하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묻는다. 영화 ‘엘리펀트 맨’은 19세기 런던에 실존했던 조셉 메릭의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순수한 마음과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이지만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외모 때문에 코끼리를 닮아 엘리펀트 맨이라 한다. 조롱과 핍박 속에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존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한다. 주위의 시선을 피해 포대자루를 쓰고 다니는 등 희귀병으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인권을 유린당한 채, 조롱과 핍박 속에서 생을 연명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인간이 얼마나 더 잔인하고 참혹할 수 있는지를 감독은 냉정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영화에서 자신을 향해 놀려대는 사람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정곡을 찌르듯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한다. 컬트영화 감독답지 않게 비교적 난해하지 않고 명확하게 주제를 드러낸다.
차별과 사회적 편견을 비판한다. 존은 희귀병으로 몸은 흉측하게 변형돼 머리는 심하게 일그러졌고 이마에는 큰 혹이 있다. 입술을 위로 말려 올라갔으며 입 위로 뻐가 돌출돼 있고 등과 엉덩이에는 수많은 혹이 나있고 오른팔을 기괴하게 부풀어 있다. 프레데릭 덕분에 존 메릭은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만 병원에서도 차별적인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의 내면보다 외모에 관심을 갖는다. 영혼은 맑고 순수하며 지적인 능력도 뛰어나다. 프레드릭의 격려에 말문을 튼 존 메릭은 세익스피어의 고전과 성경까지 섭렵한 아주 박식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영화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한 인간을 얼마나 힘들고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 또한 돋보인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서사 구조, 초현실적이며 몽환적이고 강렬한 음악과 시각적 의미를 구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복잡하고 난해해 관객을 내면의 무의식 속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영화를 두고 컬트영화의 거장, 컬트영화의 귀재로 불리지만 한편 이러한 이유로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영화 ‘엘리펀트 맨’은 초기작품이라 비교적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운 음악과 빛과 대조를 이루는 시각적 스타일, 연민과 잔인함,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우며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린다. 주제를 다루는데 과하지 않게 감정을 절제하며 조절한 연출력과 젊은 시절의 안소니 홉킨스와 존 허트의 뛰어난 연기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관객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되면서 과거에 비해서는 인권이 크게 신장되고 차별도 완화됐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우리 곁을 떠났지만 컬트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영화 ‘엘리펀트 맨’을 통해 시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 냉철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