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이 1392년 7월 17일에 세워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월이나 날짜까지는 몰라도 1392년에 건국되었다는 건 아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조선’이라는 국호가 정해진 건 시간이 좀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서기 1392년 11월 29일 이성계는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명나라로 보낸다. 그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맡았는데 바로 국호를 정하는 일이었다.
조선은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왕국이었고, 화령은 다름 아닌 이성계가 태어난 곳이다.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존재했다. 특히, 명나라는 고려를 이런 저런 핑계를 대서 괴롭혔다. 고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위화도 회군 역시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한다고 통보하면서 비롯되었다. 격분한 우왕과 최영이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나서자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며 만류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고, 실제로 요동을 공격했던 적이 있던 이성계로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거기다 전쟁터가 될 지역은 이성계 집안의 거점이었고, 전쟁터에 가장 먼저 동원되는 병력도 이성계 집안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가별치들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홍건적에서 시작했지만 원나라를 근거지인 막북까지 쫓아가서 큰 타격을 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한 명나라와의 전쟁은 이성계로서는 몹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이 고집을 꺾지 못하면서 결국 압록강의 위화도까지 진격했다가 결국은 회군을 감행했다. 4년 후인 1392년, 드디어 조선을 세웠지만 명나라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명나라와의 관계 회복은 물론 건국의 정당성을 확인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 개의 국호를 짓고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1390년, 파평군 윤이와 중랑장 이초가 명나라에 건너가서 이성계가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고 그가 우왕과 창왕을 죽이고 세운 공양왕은 왕씨가 아니라 이성계의 친척이라는 주장을 했다.
더 나아가서 이성계가 군대를 일으켜서 명나라를 치려고 하고, 그걸 말리는 목은 이색을 비롯한 대신들을 참살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실록에 윤이와 이초의 옥사로 기록된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옥사가 일어난다. 이성계를 지지하지 않는 관료들이 줄줄이 감옥에 갇혀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연루된 사람 중에는 관음포 해전에서 왜구를 몰살시켰던 정지 장군도 포함될 정도였다. 물론, 명나라가 이 터무니없는 모함을 믿지 않으면서 이성계 입장에서는 나름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명나라와의 긴장 관계가 이어지면서 조선의 건국을 승인 받는 일은 정말로 중요해졌다. 거절당하거나 시일이 지체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막대한 임무를 가지고 명나라로 간 예문관 학사 한상질은 다음 해인 서기 1392년 2월 15일에 한양에 도착한다. 그가 가지고 온 예부의 자문, 그러니까 조선이 중국과 공식적인 교류를 할 때 주고 받은 문서에는 이성계가 원하던 답변이 적혀있었다.
우리가 아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며, 기술적으로 얘기해서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 아니라 1393년이라고 주장해도 될 법한 내용이다. 물론, 고려가 1392년에 멸망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조선이라는 국호가 명나라의 승인을 받기까지 소요된 반년 동안 사실상 이성계가 국왕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역사는 거대한 건너뛰기를 하는 와중에 작은 디테일들을 숨겨놓는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있는 것처럼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다. 역사는 그런 자잘한 파편들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다. 명나라의 승인과 조선이라는 국호를 인정받은 이성계는 몹시 기뻐하면서 교지를 내려 죄수들을 풀어주라는 사면령을 시행했다. 그리고 교지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구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명나라로부터 국호를 받아온 한상질의 손자가 바로 그 유명한 칠삭둥이 한명회라는 것이다.
정명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