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美 자동차 관세 시행… 관세율 25%
상호관세는 중복 부과 미적용… 최악은 면해
현대차·기아·한국GM, 2분기부터 수익 하락 불가피
완성차 뿐 아니라 부품사까지 모두 사정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예고한 상호관세가 베일을 벗으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대미 수출 관세가 25%로 확정됐다.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역시 25%로 책정됐으나, 앞서 발표했던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의 품목별 관세와는 중복 부과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품목별 관세 25%에 추가로 상호관세를 부담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당장 오늘부터 자동차 관세 부과가 시작된 만큼 국내 자동차 업계의 수익 하락은 불가피하다. 또 완성차가 아닌 각종 부품사의 경우 상호관세를 적용받는 만큼 국내 자동차 관련 산업 침체 역시 가시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각국의 상호관세율은 일본 24%,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대만 32%, 인도 26% 등이다.상호관세는 기본관세와 개별 관세로 구성됐으며, 각각 이달 5일과 9일에 시행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수십년 동안 미국은 가까운 나라와 먼 나라, 친구와 적국 모두에게 약탈당하고 강탈당했다"며 "한국, 일본과 매우 많은 다른 나라들이 부과하는 모든 비(非)금전적 (무역)장벽이 어쩌면 최악"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존 개별 관세가 발표된 품목과 무역확장법 232조에 적용된 품목 등은 상호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를 비롯해 ▲구리·의약품·반도체·목재 ▲향후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 ▲금괴 ▲에너지 및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특정 광물 등도 상호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한국GM 등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완성차에 대해 부담해야할 관세는 25%로 최종 확정됐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자동차 관세에 상호관세가 추가로 붙지 않는 만큼당장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이다.
다만,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0%의 관세를 적용받으며 대량의 자동차를 수출해왔던 만큼, 25%는 충분히 큰 타격을 불러올 수 있는 수치다. 오늘(3일)부터 자동차 관세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타격이 본격화됐으며, 현대차·기아·한국GM이 직접적인 사정권에 들게됐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가 직접 관세전쟁을 멈추기 전까지는 조정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각국의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 역시 미국에 직접 방문해 관세 유예 또는 감경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내 수요가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 자르듯 수출을 멈추기는 어려운 만큼, 국내 업체들 역시 당장은 관세를 부담하며 손해를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출량을 조정하거나 미국에서의 판매 가격 인상 등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당장 올 2분기부터는 수익 악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으로선 미국 시장에서 철강부터 부품, 완성차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31조 투자를 결정했으나, 이를 빌미로 관세를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 동안 21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발표했으며, 이는 1986년 미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이자 현대차 시가총액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HMGMA 준공식 당시 "관세 발표 이후에 계속 협상을 개별 기업으로도 해나가고, 또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가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4월 2일 이후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자동차 관세 정책 시행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피해 규모는 수십조 단위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작년 대미 수출량은 101만5005대에 달한다. 현대차가 63만7638대, 기아가 37만7367대를 수출했다. 대당 가격을 4000만원으로 어림잡아 계산하더라도 관세를 부과하면 관세로만 10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연간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완공했고, 향후 해당 공장의 생산능력을 20만대 추가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지만, 모든 설비 공사가 끝나고 공장을 풀가동한다 하더라도 관세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현대차·기아의 작년 미국 내 판매량은 170만대에 달하는데, 미국 내 생산량을 목표치까지 끌어올려도 총 생산능력은 120만대 수준이다. 게다가 HMGMA의 지난달 기준 출고량은 4073대에 불과해 해당 공장의 생산량을 풀가동해 관세 부담을 막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는 관세부담을 최소화하고 수익성 하락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 생산 차종을 조정하고,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인기가 높고 수익성이 좋은 하이브리드차, SUV 등 고가 차종을 현지에서 주력 생산하고, 관세가 붙더라도 비인기 차종과 저가 차종을 수입하는 방안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미국 내 판매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 역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CEO는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최근 발표된 관세 조치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 영향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현대차는 오랜 기간 고객 가치를 창출해온 기업이다. 우리는 항상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며, 현재 미국 내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손실액 자체는 수출량이 많은 현대차·기아가 높지만, 심각성은 한국GM쪽이 더 크다. 한국GM의 경우 내수 판매량이 극히 낮고, 수익 대부분을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GM의 작년 미국 수출량은 약 41만대로 대미 수출 비중이 무려 85%에 달한다. 수익 악화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닌, 존폐의 기로에 서게된 셈이다.
한국GM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델들이 전세계 GM 공장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생산되고 있는 데다, 보급형 모델이라는 점은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현재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델은 쉐보레 트랙스 오버,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 2종과 두 모델의 파생 모델 2종을 합해 총 4종으로, 많이 팔아야 남는 저가 차종으로만 이뤄져있다. 대당 가격을 3000만원으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관세만 무려 3조1500억을 부담해야한다.
신차 없이 수출로만 버텨온 만큼 내수 시장에서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 올해 완성차 5사 기준 한국GM의 내수 점유율은 1.3%에 불과하며, 월 판매량은 1500대 수준이다. 당장 수출에서 길이 막힌 한국GM을 위해 미국 GM 본사에서 수천억에 달하는 신차개발 비용을 투자할 가능성도 낮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내수 판매량이 높고 한국이 본진이지만, 외투기업인 한국GM의 입장으로선 당장 실낱같은 희망도 없어진 상황"이라며 "한국 판매를 딜러사 체제로 남기고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고, 국내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미 수출 1위 품목이었던 자동차에 관세 리스크가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4400만달러로 전체 자동차 수출액(707억8900만달러)의 49.1%를 차지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동차 산업에 25% 관세를 매길 경우 올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작년 대비 18.59%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완성차 뿐 아니라 자동차 관련 산업의 타격도 현실화됐다. 완성차가 아닌 자동차 관련 부품의 경우 오는 9일부터 시행될 상호관세의 사정권에 들어 똑같이 25%의 관세를 부담하게 된다. 부품을 곧바로 수출하지 않더라도 자동차의 대미 수출량 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납품 물량이 크게 줄어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업계에선 앞으로 2년 내 중소 부품업체 20%가 도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