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내부 행장' 또 불발…40년 간 이어지는 낙하산
행시 관료 출신 최종구 신임 행장 임명…내부 승진 또 무산
조기 대선 현실화 가능성↑…혼란한 정치권 속 불안한 출발
한국수출입은행의 새로운 행장에 또 다시 외부 인사가 수혈됐다. 4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외부에서 수장을 모셔온 수은은 내부 출신 수장의 꿈을 또 다시 3년 뒤로 미루게 됐다.
이번에도 관료 출신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정권의 꽃보직이라는 기존 시각을 확인시켜 줬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정치권 상황에 불안한 출발을 알리고 있다.
7일 수은에 따르면 임기가 끝난 이덕훈 전 행장 후임으로 최종구 SGI서울보증 사장이 내정됐다. 임기는 3년이다.
최 신임 행장은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재정경제부에서 외화자금과장과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거쳤고, 기획재정부에서 국제금융국장과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을 지낸 국제금융 전문가다. 이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1월부터 SGI서울보증 사장을 맡아 왔다.
이로써 1976년에 설립된 수은은 이번에도 외부에서 행장을 영입하게 됐다. 설립 41년째를 맞고 있지만 수은의 역대 행장 중 내부 승진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수은과 함께 대표 국책은행으로 꼽히는 KDB산업은행 수장의 경우 내부 출신 인사가 세 차례 선임됐던 모습과 비교된다.
최근 다섯 명만 돌아봐도 수은 행장은 사실상 관료 출신이 독점해 왔다. 양천식 전 행장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었다. 진동수 전 행장과 김동수 전 행장은 각각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다. 김용환 전 행장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었다. 이덕훈 현 행장은 우리은행장을 지낸 민간 출신 인사였지만, 그 역시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출신의 대표적 친 정권 인사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내부 인사설'이 유력하게 떠올랐었다는 점에서 수은 내부의 아쉬움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수은 고위직 사이에서는 '이제는 내부 승진이 나올 때도 됐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기도 했다.
유독 내부 출신 승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이유는 외부 환경 탓이 컸다. 각종 악재에 수은 행장 직의 부담은 늘고 이에 인기는 떨어지면서, 책임을 질 수 있고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내부 인사가 수장을 맡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최근 수은이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침을 겪고 있고, 관련 책임이 후임 행장에게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수은 행장 직에 대한 관심이 더욱 줄어든 이유였다. 더욱이 수은 행장이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은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관료 출신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은 행장이 정권의 꽃보직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문제는 최 신임 행장이 그 언제보다 불안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시한부 행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만약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황교안 권한대행이 임명한 최 행장의 입지는 불안해 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욱 기대가 높았던 만큼 수은 내부의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충분히 자체 행장을 배출할 만큼 역사도 쌓였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이번에는 정말 내부 행장이 나올 때라고 생각하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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