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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연예계 미투, 판도라 상자 더 열려라


입력 2018.02.24 07:14 수정 2018.02.24 07:2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강력한 처벌로 '성착취' 권력 구조 깨뜨려야

지난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검찰에서 시작해 연극계 거장들을 향했던 미투 운동이 드디어 연예인들을 조준했다. 일단 출발은 조민기였다. 처음 문제가 불거진 후 조민기 측은 ‘명백한 루머’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대학교에서 징계 받은 것도 성추문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성희롱으로 징계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조민기의 신뢰성이 추락했다. 조민기가 처음에 백배사죄하며 자숙했으면 뒤이어 터진 미투 고발들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조민기가 전면 부인하며 정상 활동을 이어갈 듯하자 제자들의 분노가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실명 폭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잘못된 대처가 빚은 참사다.

조민기에 이어 현재 상영 중인 ‘흥부’의 조근현 감독에 대한 고발이 나왔다. 뮤직비디오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지망생에게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 준비하는 애들 널리고 널렸고 다 거기서 거기다.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영화라는 건 평생 기록되는 거야,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등의 발언을 했다는 폭로다.

뒤이어 남자친구 유무, 사생활 등을 캐물으며 “오늘 말고 다음 번에 또 만나자. 술이 들어가야 사람이 좀 더 솔직해진다. 나는 너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성상납을 암시했다고 느낄 법한 내용이어서 충격적이다.

‘여배우에겐 연기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감독의 배우관도 충격이다. 한국 영화계가 이런 배우관이 횡행하는 수준이었단 말인가? 과거 중소기획사에 신인 오디션을 보러 간 여성에게 대표가 ‘성적인 요구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다면 그만 두고 돌아가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런 과거의 문화가 아직까지 연예계에 온존해온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놀랍다.

바로 이어 오달수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90년대 연극하던 시절에 여자 후배들에게 성추행했다는 주장이다. 반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처음엔 코믹 배우로 알려졌다가 ‘오모 씨’가 된 후, 결국 실명이 보도되고 말았다. 이 정도로 일이 커졌으면 즉각 해명이 나와야 정상인데, 침묵을 지키기 때문에 더욱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조재현도 휘말렸다. 배우 최율이 자기 실명을 공개하며 조재현의 프로필을 게재했다. 여성 스태프에게 안마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보도됐다. 이에 대한 조재현의 해명도 즉각 나오지 않아 의구심을 키웠다. 이외에 뮤지컬 제작자가 공공연히 성추행했다는 주장도 나와 있는 상태다.

원래 미투 운동은 미국 영화계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 연예계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해보였는데 그동안 조용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눈치를 더 많이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조된 분위기에 마침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각각의 사실관계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공론장은 들끓고 있다.

본격적으로 연예계 미투 운동이 진행되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다. 그야말로 초유의 대형 사태로 커질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부적절한 성의식과 여성관, 유력자의 봉건적 권력 문제가 심각했다. 이윤택이 잠시 영화감독을 했을 당시 문을 열어놓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태에서 여성에게 안마를 받았다는 증언이 보도됐다. 큰 어른이 이렇게 공공연히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예술계 사람들이 무엇을 배웠을까?

이러니 ‘원래 그 바닥은 다 그렇다’는 오도된 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런 인식이 여성들의 피해를 강화하기도 했다. 가해자가 ‘원래 그런 바닥이고 선배들도 그랬으니 너도 피해를 감내하라’고 요구하고, 지망생이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쉬쉬한 결과 가해자도, 피해자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둔감해졌다. 당연한 관행이며 마땅히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라는 인식까지 있다. 전면적 미투 운동과 강력한 처벌로, 성착취가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절대로 있어선 안 될 범죄라는 인식 말이다. 또 다른 용기 있는 목소리와, 그들을 응원하는 사회의 조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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